"수도권 쏠림·지방 소멸… 의료법인 개혁 논의 본격화"

50년 된 경직된 의료법인 제도, 지역 불균형 심화 원인 지목돼
해외 모델 참고한 '의료전문법인' 제안… 설립·운영 주체 의사만
"불법 사무장병원 방지·중소 의료기관 지속가능성 확보에 기여"

김아름 기자 2025.09.25 06:32:21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라는 한국 의료의 구조적 위기를 풀 해법으로 '의사 주도 비영리 의료전문법인' 도입이 제안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현행 의료법인 제도가 50년간 개정 없이 경직된 틀 속에 머물면서 지역 불균형을 심화시켰다고 진단하며, 의사들이 직접 설립·운영하는 한국형 비영리 모델을 사회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원장 안덕선)은 24일 의협 회관에서 열린 '의료기관 법인화 관련 국내외 현황과 시사점' 의료정책포럼에서 새로운 형태의 법인 모델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비영리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설립 주체를 의사로 한정한 법인 형태'다.

수도권 쏠림 가속, 지방은 공백 심화

주제 발표를 맡은 김형선 부연구위원은 지난 50년간 유지돼 온 현행 의료법인 제도가 시장 양극화와 지역 불균형을 악화시켰다고 진단했다.

그는 2016년부터 2024년까지의 의료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외래는 개인 의원, 입원은 법인 병원이 주도하는 이원화 현상이 뚜렷해졌다고 밝혔다. 문제는 지역별 편차였다.

김 부연구위원은 "의료기관과 병상은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집중되고 있으며, 부산·광주 등 광역시는 물론 전남·경북 등 지방의 의료법인 수는 크게 줄었다"며 김 부연구위원은 "지방 의료 인프라 붕괴가 이미 진행 중"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정부가 지역의사제, 공공병원 확충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의료기관 설립의 근간인 법인화 논의는 손을 대지 않고 있다"며 "현행 제도로는 인구 감소 지역의 의료 공백을 채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형 '의료전문법인'… 비영리 원칙·의사 주도

김 부연구위원이 제시한 대안은 일본·독일·캐나다 등 해외 사례를 분석해 도출한 '의료전문법인' 도입이다. 이 모델은 비영리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설립 주체를 의사로 제한한다.

이는 비의료 자본 유입을 차단해 의료 전문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공동 출자와 운영을 통해 안정적인 자본 조달과 의사결정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캐나다의 의료전문법인(MPC)과 유사하다.

김 부연구위원은 "잉여금의 외부 배당을 금지하고 재투자를 의무화하면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다"며 "특히 지방에서 지속가능한 중소 규모 의료기관 설립을 유도해 불법 사무장병원 문제를 제도권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패널토론서 "현 제도 좀비 병원 양산"

뒤이은 패널 토론에서는 현행 의료법인 제도의 한계와 새 모델의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제시됐다.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는 현 제도를 "50년간 실패한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의료법인은 인수합병 금지, 부대사업 제한 등 다른 공익법인에 비해 과도한 규제를 받고 있다"며 "이는 결국 '좀비 의료기관'을 양산하고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규제만 강화하는 '못된 부모'가 아니라 합리적 지원을 병행하는 역할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봉식 아이엠재활병원장(전 의료정책연구원장)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짚었다.

그는 "개인사업자는 소득의 60%를 세금으로 내 재투자가 불가능하다"며 "법인화를 추진했지만 토지·건물 동시 출연, 부채 과다 산정 등 비현실적 규제에 막혀 포기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료인만 참여하는 비영리 전문법인 형태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공감을 표했다.

박지용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중론을 폈다.

박 교수는 "법인 형태 다양화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제도 변화만으로 지역 불균형이 해결되기는 어렵다"며 "의료인들이 지방에 정착할 수 있도록 강력한 재정 지원과 지속가능성 확보 방안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성과 연동형 보상이 사실상 우회 배당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보완 논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포럼은 의사 주도의 비영리법인 도입 논의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방 의료 붕괴와 수도권 쏠림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단순히 인력 확충이나 공공병원 확대를 넘어 제도적 기반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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