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부재 전형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 시범사업

[보건포럼] 이광민 부천시약사회장

지난 2012년 프로포폴, 미다졸람, 졸피뎀 등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 및 과다처방, 의료인 불법 사용 등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며 사회가 떠들썩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도 병원을 돌며 마약성 진통제를 상습적으로 처방받아 투약한 사람, 환자가 잠든 병실에 들어가 링거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빼내 투약한 간호사 등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 관련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단골 기사로 온오프라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2012년 말 식약처는 마약류 의약품에 대한 안전관리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제조 단계부터 처방, 유통, 사용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관리 강화 및 마약류 취급 정보 전산보고 시스템(이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구축을 내용으로 하는 마약류종합관리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 따른 결과물은 작년부터 RFID 기반 마약류 관리 사업인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시범사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은 2017년 전면 시행을 목표로 2015년 의료용 마약에 이어, 2016년에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대상을 확대하여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마약류 의약품 안전관리라는 대의명분은 너무나 강력하고 현재까지의 사회적 경험들이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준다. 대규모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신규 시스템 도입도 정부 내 협의를 어렵지 않게 얻어낼 수 있는 프리패스를 태생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프리패스는 합리적인 정책 결정을 위한 시선을 흐리게 하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마약류 의약품 규제 정책은 다른 의약품 정책에 비해 더욱더 규제 당국의 권한에 맞는 제한된 범위에서 비용효과성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취급자의 수용성을 세밀하게 고려해야 하며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사업의 필요성 및 타당성에 대해서부터, 시행 방법, 사업 비용부담 등 지엽적이지만 핵심적인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거세다. 

먼저, 왜 마약류통합관리라는 별도의 시스템이 필요한지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다. 현재 복지부·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서 마약류 의약품을 포함하여 모든 의약품의 공급 및 사용내역을 보고 받고 있고, 환자별 처방 정보가 청구 자료의 형태로 모두 관리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전문의약품 및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등의 지정의약품을 대상으로 시행된 ‘일련번호 의무화 제도’를 바탕으로 위조·불량 의약품 차단을 막기 위해 의약품 공급 내역 보고 시 일련번호 등을 포함한 ‘의약품 이력관리 체계’가 시행된다. 정부는 이 정보를 의약품 유통 현황이나 실거래가 조사 등에도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이 체계는 제조사와 도매상 단계에서만 일련번호 정보 등이 보고·관리 되고, 환자 사용단계에서는 일련번호가 연결되지 않는 구조이다. 만약 필요하다면 마약류 의약품에 대해서 환자 사용단계까지 일련번호 보고 의무를 확대한다면 정보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없고, DB, 관리기관 등 이미 갖춰진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으므로 효율적일뿐만 아니라 요양기관 등 취급자도 편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의약품안전관리원)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으로도 약 35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대규모 사업으로 별도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국민과 이 사업에 협조해야 하는 취급자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 

복지부의 ‘의약품 이력관리 체계’가 투명한 의약품 유통관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반면, 식약처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은 마약류 오남용 방지라는 다른 목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관리 목적과 주체에 따라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규제자 측면에서는 명확하고 편리하겠지만, 정부 부처간 협력 및 정보 교류가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중복 투자가 필요 없는 사업은 아니었는지 근원적으로 의구심이 드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운영으로 과연 마약류 오남용을 실질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유통측면에서 마약류 의약품의 불법 사용은 마약류 관리 대장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그야말로 범죄로 이루어지는 영역이기 때문에 의약품의 최소유통단위에 부착되는 일련번호 단위 보고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결국 단위 처방량, 처방일수 등 처방 정보 모니터링을 통해 오남용을 관리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다시금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이 별도로 필요한 이유와 사업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앞서 언급한 의약품 일련번호는 제품코드, 유통기한, 제조번호 등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D 바코드 또는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를 통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각 회사의 상황에 따라 선택하도록 했기 때문에 다수의 중소 제약사에서는 초기 투자비용 등을 고려하여 2D 바코드를 채택했다. 그런데 식약처에서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한 마약류 취급 정보 전산보고는 RFID로 일원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RFID는 기술적으로 상당히 개선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간섭 현상이 심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이 시범사업 참여자들의 중론이다. 소형 의약품의 경우 리딩 오류가 특히 더 심할 수 밖에 없으며, 오류가 나면 결국 일일이 의약품을 코드별로 줄 세우고 수량을 세어가며 검수를 해야 한다. 아직까지 참여업체가 많지 않아 리더기 불량이나 고장관련 AS도 어렵다. 시범사업을 수행했던 기관들의 경험으로는 리더기 고장 수리가 벌써 몇 년째 미결 상태라는 불만도 들린다. 

나홀로 약국이 70%에 이르는 약국 환경에서 기술이 성숙 단계에 이르지 않은 RFID를 의무화하여 성급하게 도입하는 것은 업무 효율 저하를 낳고 이는 곧 환자 서비스 질 저하 및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잘 통제된 시범사업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해서 전체 약국 현장에서 모든 마약류 의약품을 대상으로 적용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실무 특이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마약류 의약품에 2D 바코드가 아닌 RFID를 부착해야 하고, 취급내역 전산보고를 RFID로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사업은 RFID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미래창조과학부와 마약류 안전관리를 강화하고자 하는 식약처의 의지가 시기적으로 잘 맞아 떨어진 합작품이다. 그 말은 곧 RFID 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는 본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치과 병의원, 한방병원, 한의원 등 마약류 의약품을 많이 취급하지 않는 기관을 제외하고 전국의 요양기관만 대략 5만개에 달한다. 시범사업에 사용되는 RFID 리더기의 단가가 80만원이라니 이 단가를 적용했을 때 한 기관에서 리더기를 1대씩만 도입해도 약 400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정부에서 시범사업에 참여한 기관에 리더기 구입비용의 50%를 보조해 줄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은 전체 요양기관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현재 약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훨씬 저렴한 의약품 바코드 리더기로도 의약품에 부착된 2D 바코드를 통해 마약류 의약품 전산화 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읽어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왜 요양기관에서 추가부담을 해서 고가의 RFID 기계를 구매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지만 정부는 사업 추진계획에 따라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기 일변도이다. 

의약품 제조회사는 약가 인상이나 사업 참여에 따른 국가 보조 등을 통해 투자 비용 회수가 가능하다. 그러나 정보통신산업 진흥을 위한 국가 사업에 민간 요양기관이 순수하게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서 참여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 주제를 다루면서 의구심, 의문, 이유, 이해 등의 단어와 물음표와 같은 문장부호가 자주 사용되었다. 그만큼 납득이 안가는 요소가 많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제약, 유통, 의료기관 대상 설명회에 비해 요양기관 등 취급자 대상 소통의 기회는 거의 없었고, 시범사업 시기도 본 사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다양한 특성의 기관이 아닌 신청자 위주로 이루어지면서 뒤늦게 여러 치명적인 논란에 직면하게 된 점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대통령이 특별히 소통과 협력을 강조하는 시기에 식약처가 대규모 정부 예산 사업을 추진하면서 특히 약국 등 요양기관의 마약류 의약품 전산화 부분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하게 접근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매몰비용은 종종 중요한 함정으로 작용한다. “세계 최초 RFID 기반 마약류 의약품 관리 시스템 운영 국가”라는 월계관을 쓰기 위해 빨리빨리 달려만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금 중립적인 의사결정을 하기를 바란다. 차제에 취급자 측면에서 마약류 의약품 관리의 구조 개선도 필요하다. 

의료기관의 경우 다양한 지점에서 마약류 의약품 관리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마약류통합정보시스템을 통해 책임 소재가 좀 더 명확해 질 수 있지만, 현 법제 하에서 대부분 관리약사가 과중한 책임을 지게 되는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제약회사 경비 상승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약국에서 다른 의약품과 별도로 마약류 의약품 관리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면, 이에 상응하는 수가 보전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시스템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과도한 처방에 대해서는 가이드라인 및 보험심사 기준 등을 통한 제어가 더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의료인의 마약류 의약품 불법 사용 문제는 윤리교육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이 반드시 병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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