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받아야 할 '희생과 헌신'

[보건포럼]이상훈 CM충무병원장

프로야구 시즌이 한창이다. 날은 점점 따뜻해지고, 선수들의 기량이 올라오면서 점점 재미를 더해가는 시기이다. 1위부터 10위까지의 전력 차가 어느 해보다 적고, 어느 해보다 흥미진진한 시즌이기도 하다. 필자도 10개팀 선수들 치료의 대부분을 맡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최근 한 프로야구팀의 주축 투수가 필자를 찾아왔다. 경기력 향상과 부상방지 프로그램 검토를 위해서 주기적으로 필자와 상담을 하는 투수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던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MRI와 많은 검사를 통해서 알아낸 사실은, 최소 여름이 끝날 때까지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팀의 상황은 투수 한 명이 시급한 때였다. 이 선수도 자신이 던지지 않으면 팀이 무너진다는 책임감에 자신을 빨리 복귀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이럴 때 스포츠 닥터는 항상 고민에 빠진다. 의사로서 근육과 힘줄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냐, 선수 자체의 희망을 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냐. 이는 물론 정답 없는 철학의 문제이긴 하다.

작년 이 맘 때쯤 또 다른 프로야구 팀의 용병이 비슷한 부상을 당하고 필자를 찾아왔었다. 그 떄는 오히려 부상이 경미하여 1주 만에 복귀할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나에게 이야기 하기를 “내 몸이기 때문에 내가 잘 압니다. 난 최소한 3달은 쉬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감독과 단장과 상의하면서도 모두 매우 답답해했다. 팀은 급하고 에이스 투수가 필요한데, 본인은 필요 이상의 휴식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스포츠 닥터로 치료를 하다 보면, 지엽적으로 본 어깨 힘줄과 근육의 상태, 선수 자신의 상태와 의지, 팀의 상황과 의지 등 이 3가지의 의견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항상 갈등과 고민 속에 결정을 내리게 된다. 필자가 가장 가치를 두는 것은 ‘선수 본인의 의지’이다.

비록 1년을 던지더라도 화려하게 영광된 1년을 만들어내고 장렬하게 산화하는 길을 원한다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물론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게 되면, 선수를 설득해서 다른 방향을 유도하게는 된다).

프로선수라는 것은 직업이 선수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평생 남는 1년의 영광을 위해서 미래를 포기할 수도 있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포기할 수도 있다. 이는 전적으로 선수 자신의 몫이고 판단이다. 그러나 앞에 제시한 예시와 같이, 많은 한국 선수들은 자신의 팀에 애정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팀에 보탬이 되고 싶어 한다.

용병 선수들은 팀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팀의 대표라면, 이런 헌신적인 선수들을 기억해주고 예우해주고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부터 이 사회에서 봉사와 헌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우와 존중이 사라진 것을 느낀다.

몇 년 전 대학 동문회에서 한 선배님이 백억이 넘는 자산을 학교에 기부했으나, 정작 받을 때만 고맙다고 하고 그 이후 단 한번도 예우나 존중 받은 적이 없다는 연설을 들은 적이 있다. 당장 눈 앞에서 이익이 될 때만 예우해주는 척을 할 뿐, 정작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가치가 없는 사회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보니 어느 누구도 조직과 국가를 위해서 희생과 봉사할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프로야구 선수들의 상반된 생각을 보면서 쓸데없는 나라 걱정이 떠오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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