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닐케톤뇨증(PKU)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올해 16살 순정이. 또래 친구들 처럼 사춘기를 겪고 있다. 어울려 다니며 영화도 보고 수다고 떤다. 라면이나 떡볶기 등 분식이 입맛에 당긴다.
얼핏 보면 여느 아이와 다른 점이 없다. 그러나 순정이는 7만명에 한명꼴로 발병하는 희귀질환인 페틸케톤뇨증(Phenylketonuria, PKU)환자다. 기분에 따라 햄버거 등을 마구 먹어대면 혈중 페닐알라닌이 상승해 지능장애, 구토, 습진, 담갈색 모발, 피부색소 결핍 등 치명적인 신체 이상에 시달리게 된다. 순정이는 철저하게 식이요법을 해야하고 평생동안 페닐알라닌의 혈중 농도를 3~15㎎/dL로 유지시켜야 한다.
순정이 어머니 김모씨는 “애가 스트레스를 많아 받아요. 한창 먹어야 할 나이에 가려 먹어야 하니 마음고생이 오죽 하겠어요”하고 안타까워한다. 순정이는 특수분유를 먹는 것 외에도 영국에서 가져온 고단백 가루와 일본산 쌀을 먹는다. 순정이의 막내동생도 같은 질환에 걸려 어머니 김씨를 애태우고 있다.

전형적 PKU

미정이 어머니 송모씨도 페틸케톤뇨증 환자다. 이 병에 걸린 환자가 임신하게 되면 저 페닐알라닌식을 섭취해야 한다. 식이요법만이 2세의 페닐케톤증을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송씨는 식이요법에 실패해 페틸케톤뇨증 환자를 출생했다. 이런 경우 치료법이 없다. 국내에 단 한명뿐인 모성페닐케톤뇨증(Maternal PKU)에 걸린 경우다. 다행히 유산은 피했으나 아이는 저체중, 소두증, 정신박약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15개월 된 준혁이는 악성페닐케톤뇨증(Tetrahydrobiopterin, 비전형 PKU)에 걸렸다.
걷는게 조금 늦고 지능이 약간 부족한 것 같지만 정상적으로 크고 있다. 순정이 처럼 전형적인 PKU는 식이요법만 하면 되지만 준혁이는 아무거나 먹을 수 있다. 대신 미국 시그마사의 트리돌판, 스위스산 BH4 등 세가지 약을 죽을때 까지 먹어야 한다.
하루에 네번을 복용하는데 잠시라고 약을 끊게 되면 뇌성마비 등 증세가 나타나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매일 약을 먹다 보니 한달 약값이 70만원정도 든다. BH4는 한알에 2천원인데 매일 8알을 복용해야 한다. 준혁이 어머니 김진희씨(33)는 “형편이 어려워 약값을 내고 나면 생활하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복지부에서 보조로 주는 20여만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비교적 가정 여건이 좋다는 다섯 살인 민지도 준혁이 처럼 악성 PKU에 시달리고 있다. 민지는 바로 PKU 진단을 받은 준혁이와는 달리 9개월만에 판정을 받았다. 성남의 한 병원에서 뇌성마비로 진단해 물리치료를 했다. 그러는 사이 병세가 안화돼 9개월이 돼도 신생아 처럼 누워 있기만 했다. 목을 가누지 못하는 것은 물론 손가락 조차 제 스스로 움직이지 못했다.
서울중앙병원에서 PKU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약 복용 이틀만에 뒤집고 목을 세웠다. 지금은 유치원에 다닌다. 의사소통에도 지장이 없다. 매일 약을 먹고 6개월에 한 번씩 MRI검사를 한다. 민지 어머니 전미영씨(35)는 “아이가 크면서 몸무게에 따라 약 복용량을 늘려야 하고 조제량이 조금만 틀려도 몸이 뒤틀리고 경기를 일으키는 등 이상이 나타나 온종일 PKU만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씨는 지금 임신 18주로 PKU 발병 확률 4분의 1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제발 정상아 이기를 기원하면서….
정부보조로 세달에 21만 6,400원을 받고 있지만 한달 약값 80만원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박혜정겳㈎ï 자매는 늦게 발견돼 상태가 안좋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누워있다.

드라마틱한 약효

PKU는 지난 1940년 노르웨이 페링박사가 정신박약아의 소변을 조사하던 중 염화 제2철 용액을 떨어 뜨리면 녹색으로 변하는 소변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54년 비켈박사는 페닐알라닌 효소계에 이상이 있어 페닐알라닌과 대사산물이 축적돼 정신박약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아내 페닐알라닌이 적은 음식이나 특수분유를 섭취시켜 정신박약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간에서 페닐알라닌을 타이로신으로 전환시키는 페닐알라닌 수산화효소가 결핍되면 페닐알라닌이 뇌조직에 축적돼 지능부진이나 자폐아증상 혹은 경련 등을 일으킨다. 특히 타이로신이 부족할 경우 색소가 적어 피부가 희고 머리카락은 담갈색이나 금발로 변하며 습진이 생긴다. 신생아의 경우 구토가 흔하며 소변과 땀에서는 페닐초산이 과량분비돼 곰팡이나 쥐오줌 냄새가 난다. 간혹 뇌성마비로 오진되기도 한다.

대사이상검사 중요

페닐케톤뇨증은 신생아에는 아무 증상이 없는 경우가 흔하다. 대부분 생후 6개월이 지나면서 천천히 나타난다. 이때부터 치료를 해도 다른 증상은 호전된다. 그러나 일단 손상된 뇌세포는 되살릴 수 없어 평생 정신박약아로 살아야 한다. 신생아 대사이상 검사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생후 1주일 정도에 실시하면 이상유무를 진단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거의 모든 주에서 신생아 대사이상 검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어 정신박약아가 나오면 국가가 법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일본 영국 스웨덴 등 대부분 선진 국가도 마찬가지. 이는 국가가 정신박약아를 기르는 양육비보다 신생아 검진에 의해 조기발견, 치료하는 비용이 더 적게 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97년부터 페닐케톤뇨증 검사를 무료로 해주고 있다.
전형적인 PKU의 경우 식이요법을 하면 된다. 페닐알라닌이 혈액 조직에 의해 축적돼 지능장애를 보이므로 저 페닐알라닌 식을 섭취해야 한다. 이런 식품으로는 전분면, 사탕, 감자유, 야채, 과일 등이 있다. 그러나 페닐알라닌은 필수 아니노산이기 때문에 성장발육과 건강을 위해 최소량은 먹어야 한다.
단백질을 보충하는 페닐알라닌을 제거한 특수분유가 효과적이다. 비전형적 PKU는 음식대신 약을 복용해야 한다. 모성 PKU는 치료법이 없다. 선청성 대사이상 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순천향병원 이동환 교수는 “조기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최상의 치료법”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다행히 약값이 의료보험에 적용돼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병원에는 전체 70여명의 페닐케톤뇨증 환자 가운데 60여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대 내분비과 양인명 교수도 “흔치 않은 페닐케톤뇨증은 뇌손상이 오기전에 미리 치료해야 하며 모성 PKU의 경우는 예방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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