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기 性' 행복한 노후 위한 필수 조건

[신년 기획특집1-안티에이징 헬스라이프] 실버시대 건강한 性/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에레부스, 리트만, 멜버른.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세 곳은 아직도 뜨거운 활화산들이다. 이 화산들의 또하나의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 남극에 있다는 점이다.

지구상 가장 추운 대륙, 영하 97도까지 온도가 떨어지기도 하는 그 냉골 크레바스 깊숙한 곳에 아직도 용암을 분출하는 활화산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또한가지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있다. 노인의 성적 욕구가 바로 그것이다.

중성(中性)이거나 무성(無性)적 인간으로 여기는 노년의 식은 몸에 남은 성욕은 흡사 남극의 활화산 만큼이나 경이로운 것이라 생각한다. 과연 늙은 인류인 여성노인이나 남성노인에게 성욕은 있기나 한 것인가?

호모 헌드레드 시대, 100세까지 가지 않더라도 70세만 넘어도 성욕은 ‘많다 적다’의 주제가 아니라 ‘존재가능여부’ 주제이다. 마치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는가를 묻는 것처럼 아직 인류가 풀지 못한 미스터리라도 되는 듯 질문은 사뭇 진지하다.

결론은 분명하다. 늙은 인류, 그 실버휴먼에게 당연히 성욕이 있으며, 그 성욕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며, 그들에게 성욕은 현실이다.

누구도 관심 없지만, 노인들 사이에는 성(性)이 생활주제이다. 70은 고사하고 80이 넘어도 부부는 성생활 문제로 싸우며 이혼을 고민하고 있고, 혼자 있는 경우도 성문제로 고민하기 일쑤다.

상담현장에서 늘 노인들을 만나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들의 일상이 성(性)인 것 같고, 성(性)이 그들의 담론인 것처럼 보인다.

노인의 성문제는 집의 담장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지 않는가?

남성노인들의 성적 욕구를 여실히 보여주는 박카스 아줌마 이야기가 뉴스에서 나와도 이제는 다들 ‘그런가보다~’ 하지만, 이는 노인의 성적 욕구, 빈곤의 문제, 성병과 같은 보건사회적 주제, 노인의 여가와 교육, 사회의 예방·치료적 역할의 중요성 등 사회 전반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주제이다.

사회범죄로 다루어지는 주제 저변에 깔려있는 분출되지 못한 남성노인들의 성이라는 주제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다.

‘할 수만 있으면 해야지’가 남성노인들의 성에 대한 주제이고, ‘아주 귀찮아 죽겠어’라는 여성노인들의 공통적인 진술은 노인들의 성적 욕구와 반응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노인들사이에서는 뜨겁다 못해 데일 것 같은 이 성담론과 성상담이, 노인이외의 세대들에게는 마치 아주 멀리 줌아웃하여 점처럼 보이거나 아예 보이지 않게된 우주 저편의 이야기이다.

노인이 옆에 있어도 그의 안부를 묻지 않고, 손마다 스마트폰이 있어 영상통화가 가능한 시대에도 할아버지 번호조차 모르는 세대에게 노인의 성(性)은 외계인의 이야기일 것이다.

또 언론에서 들려오는 노인의 성은 주로 박카스 아줌마 이야기와 같은 성매매 아니면 성병증가율 등에 관한 이야기라 매우 부정적이고 음흉한 이야기라는 이미지가 굳어져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부정적 일부 사실이 노인의 성 전체인 것처럼 부정적으로 일반화되는 것은 안될 일이다. 심리학의 아버지 프로이트 말대로 성욕이라는 것이 인간 생존의 중대한 에너지이고, 이 에너지는 늙어 죽는 순간까지도 이어지니, 노인이 인간이라면 노인 역시 중대한 에너지인 성욕의 보고일수 밖에!

남극에 활화산이 있는 것은 신비가 아니라 현상이듯, 노인들에게 성욕이 있는 것은 신화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남극의 활화산이 모순처럼 보이는 것은 편견에서 비롯된 무지와 무관심에 있고, 노인에게 성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리학적 무식보다 더 큰 노인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 기인한다.

남극이야 가본 자가 드무니 신비할 수도 있으나, 우리 옆에 노인들은 천지에 널렸고 심지어 요즘은 인류중 노인의 수가 더 많아 보이기도 한 세상이 됐으니, 노인의 모른다는 것은 그 희소성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전적인 ‘무관심’과 ‘무지’ 때문이라 할 것이다.

늙은 부부가 함께 손을 잡고 공원을 걷고, 벤치에서 사랑의 눈맞춤을 하고, 주름진 얼굴을 쓰다듬어주는 장면을 ‘사랑’이라고만 말하지 말라. 이것이 ‘성(性)’이다. 사랑과 성(性), 어떤 그림을 더 크게 그리고 있는가? 나에게는 이는 등치이고, 등식이다.

사랑이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니듯, 성(性) 역시 신이 나이 들도록 주신 평생의 선물이다. 몸을 포함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노인은 늙도록 사랑한다. 사랑이 보고 만지고 느끼고 마시고 숨 쉬는것이라면, 노인은 겪어본 사랑의 기억마저 섞어 사랑을 욕망하고 흡량하고, 누린다.

가장 차가운 몸으로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노인들의 성(聖)스럽기까지한 성(性)을 알고자하고 발견하고자할 때, 무지는 탄성으로 변하고 무관심은 유레카의 고백으로 변한다.

미래의 자신을 알고 싶다면 노인을 공부하고, 인류의 욕망을 알고 싶다면 노인의 욕망을 살피자. 늙어가는 인류의 가장 오래가는 이 욕망은 거대한 문명 앞에 힘을 잃어가는 인간의 의지에 희망의 빛이 될 것이고, 늙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기쁨의 노래가 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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