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와는 다른 녹십자그룹의 경영권 경쟁

[기자수첩]

녹십자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허씨 오너 일가의 행보가 화제다.

지난 2009년 故 허영섭 전 회장의 타계 이후, 경영권을 승계받지 못 한 장남 허성수 씨가 제기한 법적공방건을 제외하면, 녹십자그룹의 경영권은 직계 및 장남 대물림이 아닌 철저한 능력제 경쟁 구도를 띄고 있다. 실제로 허일섭 회장은 유학생활을 통해 뛰어난 경영 감각을 가진 허은철 녹십자 대표에게 차츰 권한을 이양하며 경영권을 안정화시켜 왔다.

여기에 지난 24일, 녹십자홀딩스는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故 허영섭 전 회장의 삼남 허용준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로써 허용준 부사장은 삼촌인 허일섭 회장과 각자대표직을 수행하게 된다. 허 전 회장의 차남 허은철 사장은 지난 2015년부터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일각에서는 허일섭 회장의 장남인 허진성씨(현 녹십자 부장)의 녹십자 지분 소유를 바탕으로 경영권 분쟁 우려를 제기했으나, 故 허영섭 전 회장의 아들들에게 경영권을 차근차근 승계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녹십자의 후계구도를 보고 있으면, 경영권 분쟁으로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국내 유명 기업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난 몇 년간, 삼성그룹, 효성그룹, 롯데그룹 등이 경영권 승계를 놓고 형제 및 친척 간의 집안 싸움을 벌여 왔다. 특히 롯데그룹의 경우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두 아들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 사이의 분쟁이 본격화되며 시가총액 1조원 가량이 폭락하는 큰 손해를 봤다.

녹십자 역시 제약사업 확대와 신사업 창출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녹십자그룹의 현 상황 속에서, 타 그룹들처럼 허 회장의 유고와 함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며 회사 이미지가 악화될 수 있었으나, 이를 슬기롭게 해결했다는 평가다.

녹십자그룹 관계자는 "녹십자그룹은 개성상인 마지막 세대인 고(故) 허채경 창업자의 정신을 받들어, 경영권 역시 능력을 갖춘 후손들이 물려받게 하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전통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에 경영권 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분쟁이 아닌 경쟁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는 녹십자그룹의 행보가 빛을 발할 지 주목된다.


류종화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카카오톡
  • 네이버
  • 페이스북
  • 트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