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중심의 정밀의학만이 해법

[보건포럼] 서정선 서울대학교 분당병원 석좌 연구교수/한국 바이오협회장

며칠전 외부강연을 준비하다가 나는 문득 의대 다닐때 일이 떠올랐다. 벌써 44년전 일이다. 본과 3학년 내과 베드사이드 실습시간에 김경식교수께서 한 말씀이다. “의사는 병을 고칠수는 없더라도 병원에 온 환자를 죽여서는 안된다. 질병은 수천가지지만 사인은 몇가지가 안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인은 ABC로 기도 폐색(Airway block),출혈(Bleeding) 그리고 심정지(Cardiac arrest)이니 병원은 이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현대식 의학은 항생제와 외과수술,그리고 응급의학의 세 기본틀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과학적 방법론의 발전이 자연스럽게 진단과 치료에서 획기적인 진보를 이룩해 냈다.암을 치료해가는 과정을 보면 RNA바이러스로 인한 암유전자들을 찾고, 여러 암유전자중에서 인체 암 원인유전자(driver gene)를 알아내고 표적치료제를 개발해서 치료하는 방식이다.

개인별 표적치료제가 맞춤형 치료이긴 하나 그래도 어느 일정한 시간대에 같은 환자군에 대한 동일한 치료법이다. 이것은 그룹별 동시적(cross-sectional)연구이다, 여기에 개개환자의 사정들이 끼일 자리는 없다. 환자는 그룹으로 비슷한 암으로 분류되고 치료된다. 질병중심의학이  과학적 근거의학의 이름으로 전성기를 맞게 된다. 개인별 병력에 따른 시간별 종적(longitudinal)연구는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이야기 이다.

정밀의학은 개인별 맞춤의학의 다른 이름이다. 여기에는 개인의 몸정보인 게놈정보가 들어간다. 환자의 병력 그리고 생활습관정보까지 같이 처리된다. 환자중심의학이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의사와 환자로 구성된 의료 시스템은 기존 의사중심에서 환자중심의 참여의학으로 바뀌게 된다. 결국 정보를 갖고 의사를 선택하는 것은 환자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이 당면한 심각한 문제들을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3-4년전 크게 문제가된  통계부터 살펴보자. 미국에서 매해 1200만명이 오진의 피해를 입고 있고, 3백만명은 질병진단이 불가능했고 75%의 환자들에서 처방약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미국인의 3대사인은 심장질환 61만명, 암질환 58만명에 이어 medical error가 25만명으로 3위라는 사실은 일반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물론 이런 경우 모든 것을 의사개인들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한국 사회와 달리 미국에서는 이를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원인으로 환자개개인들의 정보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밀 맞춤의학의 도입을 추진하게 된다.

개인의 질병취약성을 정보로서 미리 알면 질병을 회피할수 있게 되어 의료수가를 대폭 낮출 수 있다. 이러한 현대의학의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근거중심의 과학적 의학이 아직 근거도 미약한 데이터중심의 정밀의학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정밀의학은 노령화로 국가 의료체계가 위기인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필연적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마지막 길이다. 의료 전문가들은 2025년 미국의 의료보험의 파산을 필두로 선진국들조차도 의료체계의 비상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021년 의료보험이 6조 적자로 돌아 설 것이라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앞으로 규제개혁을 통해 대규모 질병위험도 예측DB 구축이나 의료 데이터산업의 활성화로 의료비 절감에 실패한다면 현재 우리 사회의 의료체계 역시 심각한 붕괴 위험에 노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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