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문턱 낮춘 반세기… 건보 지속가능성 '시험대'
[2026년 창간 60주년 기획특집/ 보건산업 60년, 미래를 가다] 건강보험 50년, 이렇게 달려졌다
전 국민 포괄하는 사회안전망으로 성장
'문재인 케어' MRI 등 비급여 항목 급여화
디지털 헬스케어 건강보험 편입 논의 필요
1977년 7월 1일 우리나라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료보험 제도가 처음 시행됐다. 당시만 해도 의료보험은 일부 직장 근로자만을 위한 제도였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지금 건강보험은 전 국민을 포괄하는 사회안전망으로 성장하며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이 됐다.
건강보험은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동시에 의료기관의 성장과 의료서비스 발전을 견인하며 국민 평균수명 연장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급격한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재정 부담 확대는 건강보험이 해결해야 할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건강보험 50년은 단순한 제도 발전의 역사가 아니라 국민 건강과 의료체계의 변화를 함께 이끌어온 역사였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출발점은 1977년 의료보험 도입이다. 당시 산업화 과정에서 근로자의 건강 보호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강제가입 방식의 의료보험이 시행됐다. 이후 적용 대상은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건강보험이 도입되기 전에는 의료비 부담 때문에 병원 진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의료기관 이용률은 낮았고, 특히 저소득층은 질병이 발생해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건강보험 도입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의료 접근성 향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외래 진료와 입원 이용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국민들은 경제적 부담을 덜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예방접종, 만성질환 관리, 암 검진 등 예방 중심 의료서비스 이용이 늘면서 국민 건강 수준 향상에도 기여했다. 전문가들은 건강보험이 국민의 의료 이용 장벽을 낮추며 의료 사각지대를 크게 줄였다고 평가한다.
건강보험이 국민 건강에 미친 영향은 기대수명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1977년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약 66세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83세를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권 국가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심혈관질환과 암, 당뇨병 등 주요 만성질환 관리 체계가 건강보험을 기반으로 구축되면서 조기 치료와 생존율 향상이 가능해졌다.
건강보험 역사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은 2000년 통합이다. 과거에는 직장과 지역 의료보험조합이 각각 운영돼 재정과 보험료 부과 체계가 달랐다. 정부는 형평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수백 개 의료보험조합을 통합해 단일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보험 재정 관리의 효율성이 높아졌고, 국민 누구나 동일한 건강보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같은 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출범하면서 급여 적정성 평가와 심사 체계가 본격적으로 정비됐다.
2000년대 이후 건강보험 정책의 핵심은 보장성 강화였다. 정부는 암과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등 중증질환 중심으로 급여 범위를 확대해 왔다. 2017년 이후 추진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은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불리며 MRI와 초음파 검사, 상급병실료 등 비급여 항목 상당수를 급여화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점진적으로 상승했고, 국민 의료비 부담도 일정 부분 감소했다. 다만 비급여의 완전한 해소에는 이르지 못했고 실손보험과의 역할 중복, 의료 이용 증가에 따른 재정 부담 확대 등 새로운 문제도 나타났다. 보건의료계에서는 보장성 확대와 재정 안정성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건강보험이 맞이한 가장 큰 도전은 초고령사회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전체 진료비 가운데 노인 진료비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건강보험 재정 부담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치매와 돌봄 수요 증가, 신약과 첨단 의료기술 도입에 따른 비용 상승도 건강보험 재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보험료 인상에 의존하기보다 예방 중심 건강관리와 의료전달체계 개편, 만성질환 관리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보건의료 환경 변화에 맞춰 건강보험 역시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인공지능(AI), 디지털 치료기기, 원격 모니터링, 정밀의료 등 혁신 기술이 의료현장에 도입되면서 기존 급여체계만으로는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주요 선진국들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편입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디지털 치료기기와 혁신 의료기술에 대한 평가 및 보상체계 마련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단순히 질병 치료에 비용을 지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방과 건강증진에 투자하는 가치 기반 의료로의 전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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