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기로 선 병원계… 병협 유경하호, '국가책임·상생의료' 승부수

유경하 제43대 대한병원협회장 취임 기자회견
필수의료 국가투자 확대·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의료사고 공제조합 추진
"병원 간 경쟁 넘어 협력"… 지속가능한 의료체계 구축 위한 4대 과제 제시

지역의료 붕괴와 필수의료 인력난, 전공의 수련체계 위기, 병원 경영 악화 등 복합 위기에 직면한 병원계가 새로운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대한병원협회 제43대 회장으로 취임한 유경하 회장은 필수의료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와 의료기관 간 상생 협력 체계 구축을 핵심 축으로 한 의료개혁 청사진을 제시하며, 지속가능한 의료체계 구축에 협회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유경하 대한병원협회장은 23일 병협회관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열고 새 집행부의 운영 방향과 주요 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유경하 회장을 비롯해 유인상 부회장(제1보험위원장), 박진식 제1총무위원장, 김우경 제1정책위원장, 노홍인 상근부회장이 참석해 향후 협회 운영 방향과 의료 현안에 대한 입장을 설명했다.

유 회장은 "의료계는 지금 지역·필수의료 인력 부족과 의료기관 경영난, 의료전달체계 왜곡 등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했던 병원계의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병협이 중심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유 회장이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병원 간 상생 협력 체계 구축이다.

그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전문병원, 중소병원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공동 운명체"라며 "병원계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조율하고 협력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협회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병협은 각 직역과 지역의 의견을 수렴하고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상생협력위원회'를 신설할 계획이다. 또한 중앙 중심의 회의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의료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소통 체계를 확대할 방침이다.

유 회장은 "의료기관이 서로 환자를 빼앗기 위한 경쟁을 하는 구조가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필수의료는 국가 기반시설… 국고 지원 확대 필요"

병협은 필수의료 지원체계 개편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응급·외상·분만·소아·중환자 진료는 국가가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공공 인프라며 필수의료를 의료진의 희생과 사명감만으로 유지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유 회장은 "필수의료는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영역인 만큼 건강보험 재정만으로 감당하려는 접근에서 벗어나 국가 재정이 적극적으로 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인상 부회장 역시 "주요 선진국들은 의료재정에서 국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국고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공의 수련도 국가 책임, 의료사고 공제조합 설립도"

병협은 의정 갈등 장기화로 흔들리고 있는 전공의 수련체계에 대해서도 국가책임형 전환을 공식 제안했다.

유 회장은 "전공의 수련은 개별 병원이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 의료인력 양성 체계의 핵심"이라며 "정부가 수련 비용과 교육 인프라에 대한 책임을 보다 적극적으로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병협은 수련 관련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전공의 교육과 수련환경 평가, 수련 프로그램 개선 등 전반적인 시스템 고도화에 나설 계획이다.

새 집행부는 의료사고 배상 책임보험 의무화에 따른 병원들의 부담 완화를 위해 병원계 차원의 안전망 구축에도 나선다. 병협은 현재 공제조합 설립의 타당성과 운영 범위 등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유 회장은 "최근 의료사고 관련 제도 변화로 병원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회원 병원들이 안정적으로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의료사고 배상 공제조합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수의료, 진료과 아닌 의료행위 중심으로 재정의해야"

이날 김우경 제1정책위원장은 필수의료 개념 자체에 대한 재정립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 위원장은 "필수의료를 특정 진료과 중심으로 구분하는 방식은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며 "응급 제왕절개, 중증외상 수술, 에크모 치료, 응급 뇌혈관 수술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행위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정책이 사망 예방에만 집중될 것이 아니라 중증 장애 예방과 사회적 비용 감소에 기여하는 고난도 의료행위도 필수의료 범주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정책과 관련해서도 병협은 의료기관 간 기능 중심 협력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 회장은 "병원은 서로 순위를 다투는 경쟁자가 아니라 국민 건강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뛰는 축구팀과 같다"며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전문병원, 중소병원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병협은 병원계 전체의 목소리를 담아 정부와 국회에 합리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 파트너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한병원협회는 오는 10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병원계 국제행사인 제49차 국제병원연맹 세계병원대회를 통해 대한민국 의료의 경쟁력과 미래 비전을 전 세계에 알릴 계획이다.

유 회장은 "지금의 위기는 특정 병원이나 특정 직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의료체계 전체가 직면한 과제"라며 "상생과 혁신, 그리고 국가 책임 강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의료의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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