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스님의 폭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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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손상대 기자
  • 작성일 : 2007-02-27 20:55:42

<121>스님과 곡차(下)


세상에 이런 스님이 어디 있을까. “예까지 왔으니 내가 동해바다 신선한 회 한접시 대접해 보낼테니 성의를 받아주시오”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일행은 근처 해안가 횟집을 찾았고 그곳에서 정말 싱싱한 회를 대접받기에 이르렀다.
이미 곡차를 마시는 스타일로 봐서 술깨나 즐기겠다는 주당들을 간파했는지 소주와 맥주도 시켰다. 우리일행중 대표가 스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또다시 건배제의를 했는데 역시 맨트는 “득남하세요”였다. 우리도 일제히 ‘득남하세요’를 외쳤다. 앞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뭐 저런 건배제의도 다있는가 싶었는지 힐끔힐끔 처다봤다. 그 이후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날 때마다 ‘득남하세요’가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


소주 몇순배가 돌아갔을까 이번에는 스님이 우리들의 기분을 더 살려주려는 뜻에서 인지 자신이 한잔씩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소주한잔이 아니라 수소폭탄이었다.
소주와 맥주를 글라스에 적당량 섞은 이른바 속세의 폭탄주나 다를바 없었다. 그러나 스님은 “이 술은 괜찮을 것”이라며 한잔씩을 권했다. 역시 스님이 주는 술은 곡차로 생각했는지 모두가 벌컥벌컥 마셨다.


어찌 미천한 속세의 중생들이 스님의 뜻을 알겠는가. 그저 마시라니 마실수밖에. 보통 취기가 약간 상승곡선을 타면 속세의 버릇을 은근히 노출 시키는 주당들이 어디에건 있기 마련이다.
짓궂은 주당 한명이 은근히 “스님도 곡차를 한잔하시지요”라며 술잔을 건네자 “고맙습니다”며 술잔을 받았다. 설마 스님이 폭탄주를 마실려고..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됐다. 따를 때까지 아무말이 없었기에 완-샷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역시 스님일 수밖에 없었다. 입에 대는 흉내만 내더니 잔을 내려 놓고는 청이 앉을 때까지 그 잔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씩 들려주는 말은 가슴속까지 파고 들었다. 인생의 무상함과 참되게 사는법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이고 희노애락이 무엇인지, 어디하나 흘려들을 것이 없었다.
사람을 감싸는 진정한 온기가 배어 나왔다. 그냥 보여주는 그 진솔한 모습에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농담섞인 말한마디에도 뼈가 있었다. 만약 스님 개그맨이 있다면 천거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수많은 스님중에서도 속세의 삶을 가장 깊이 헤아리고 있는 것 같았다.


펄펄끓는 매운탕이 바닥을 보일때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울까지 올라가야할 시간 때문에 그 귀하고 귀한 스님과의 시간을 멀리한채 버스에 올랐다. 하루만의 정이 이토록 깊을 수가 있을까. 부르릉 버스소리가 못내 아쉬웠던지 마른 오징어 한축을 사주시며 횟집앞에서 손을 흔들던 그 스님을 잊을 수 가 없다.


만남의 정보다 헤어짐의 아픔은 우리같은 중생이나 스님이나 모두가 같은 것일까. 그날 우리를 떠나 보내는 스님의 눈가에는 분명 눈물이 고여 있었다. 우리 일행은 서울을 향하는 길에서 다시 한 번 찾아 갈 것을 의기투합했다. 왜! 아직도 그 동굴속에 남아 있는 곡차가 그리워서 말이다. “바로 너희들이 주당이구나”하는 스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강원도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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