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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코피 터지면 약사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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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손상대 기자
  • 작성일 : 2007-02-27 21:06:07

<128> 택시기사  체험소설(下)


여자 손님은 체념한 듯 치마를 입더니 차에서 내릴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어찌 하늘이 준 행운을 이렇게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세치 혓바닥을 한바퀴 돌리고는 “아니요 저가 원하는대로 가겠습니다. 어디면 좋을까요.”
“바쁜 사람들끼리 멀리갈 것 없잖아요. 아무데나 가까운데 갑시다.”
택시는 빗길을 가로질러 어렴풋이 보이는 모텔로 향했다. 일단 가기는 가는데 뒷탈이 없도록 하기위해 나름대로의 작전을 정리했다.


모텔비는 내가 낸다. 지갑과 가지고 있는 현금은 차에 두고 내린다. 차키는 카운터에 맡기고 내가 아니면 절대 주지 못하도록 한다. 들어가서는 어떤 여자인지 적당히 찬스를 봐서 확인해본다. 행사가 시작되면 최선을 다해 죽여준다.
이상과 같은 전략을 순식간에 정리하고 모텔앞에 도착할 무렵, 이 여자가 또 지갑에서 10만원권 수표 한 장을 꺼내더니 모텔비 계산하고 맥주 몇병만 시키라는 것이었다.


참 황당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뭐에 홀린 것 같기도 하고, 횡재를 만났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간 손해볼 것 없는 장사. 몸으로만 때우면 되는 것 아니겠나 싶어 시키는대로 따라했다.
둘은 모텔로 들어갔고 약속대로 맥주가 배달돼왔다. 그런데 이 여자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 마치 자기 집에 온 것 마냥 옷을 훌훌 벗기 시작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아저씨도 나처럼 옷 다벗어,그래야 맥주맛이 나지”라며 벗을 것을 강요했다.


참 사람 돈 몇푼에 망신살이 넘쳐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도 그 싱싱한 몸매에 홀린 탓인지 순순히 거죽을 벗겨냈다. 둘다 알몸이었다. 회심의 미소를 짓던 그 여자는 서서히 접근해 오더니 무릎위에 앉아서 맥주를 따라달라는 것이었다.
짜릿한 순간이었다. 일단 살과 살이 마주쳤다는 것만 해도 사건의 화살은 당긴 것이다. 이렇게 앉았다 저렇게 앉았다 하더니 맥주 3병이 비워질 무렵 샤워를 한다고 욕실로 들어갔다.


순간 재빠르게 지갑을 꺼내봤다. 주민등록에는 1968년생 서울 태생이었다. 안쪽으로는 고액수표 뿐아니라 먼지 하나 붙지 않은 현금도 가득했다. 손이 떨렸다. 그러나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 많은 돈을 넣어다니는지, 보통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을 과감하게 하는 건지, 생긴 것이나 입고 다니는 것으로 봐서는 모난 행동을 할 여자가 아니었다.


하여간 그날 밤, 기사선생은 얼마나 중노동에 시달렸는지 새벽 5시경 잠에 곯아 떨어졌다. 아침 10시경이 되어서 일어나 보니 그 여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테이블에 또 10만원권 수표 한 장을 놓고는 그 옆 메모지에는 의미심장한 메모를 남겨놓았다.
“아저씨 바빠서 먼저 가니 혹시 다음날 아침 코피를 쏟으면 이 돈으로 약좀 사드세요. 먼저 가서 미안해요. 언제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죠.”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루 일당 30만원에 재미까지 봤으니 그날은 횡재한 것이 틀림없었다. 점심때가 될 무렵 메모에 남겨진 것처럼 코피를 쏟았다. 흔히 하는 말로 그 여자는 옹녀였다고나 할까.
택시기사는 나에게 삼류소설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때문에 나는 요즘 택시이용시 꼭 이와 유사한 경험들을 기사분들게 넌지시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혹시 나도 요즘들어 택시기사나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자주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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