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 속 데이터로 읽는 도시의 마약 문제

[기고] 고숙경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식품의약품부 약품화학팀장

고숙경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식품의약품부 약품화학팀장 

마약 문제는 더 이상 특정 집단이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공중보건과 안전을 위협하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신종 합성마약의 확산과 온라인 유통의 증가로 마약 사용 양상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기존의 단속 중심 접근만으로는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마약 문제를 단순 범죄 대응 차원을 넘어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접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주목받는 방법이 바로 '하수 기반 마약 모니터링(Wastewater-Based Epidemiology, WBE)'이다.

하수 기반 마약 모니터링은 도시 하수처리장으로 유입되는 하수를 분석해 마약류와 그 대사체를 측정함으로써 특정 지역에서의 마약 사용 규모와 패턴을 추정하는 방법이다. 사람이 마약을 복용하면 체내에서 대사되면서 소변이나 배설물을 통해 하수로 배출되는데, 이를 분석하면 개별 사용자를 특정하지 않으면서도 지역 단위의 마약 사용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설립된 기관인 European Union Drugs Agency(과거 European Monitoring Centre for Drugs and Drug Addiction 승계, EUDA)를 통해 여러 도시의 하수 데이터를 비교해 마약 사용 패턴을 파악하고, 신종 마약류를 조기에 탐지하는 공중보건 감시 체계로도 활용하고 있다. 축적된 데이터는 예방 정책 수립과 위해 대응 전략 마련을 위해 제공되고 있으며 특히 신종 합성마약은 유통 속도가 빠르고 기존 검사 체계에서 즉각 포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하수 기반 감시는 새로운 위해 요인을 조기에 탐지하는 보완적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수 기반 모니터링의 가장 큰 장점은 익명성을 유지한 채 비교적 신속하게 실제 지역사회 전체 수준에서 마약류 소비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마약 실태 파악은 검거 통계나 설문 조사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실제 사용 규모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하수 분석은 특정 시점에 도시 전체에서 배출되는 마약류의 총량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현실적인 사용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또한 계절, 요일, 특정 행사 기간 등에 따른 변화를 비교함으로써 마약 사용 패턴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이러한 모니터링은 더욱 의미가 크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는 마약 유통과 사용이 빠르게 확산할 가능성이 있으며, 동시에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수 기반 분석을 통해 특정 지역이나 시기에 마약 사용 증가 신호가 포착된다면, 이는 단속 기관과 보건 당국이 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 즉 단순한 단속을 넘어 공중보건 감시 체계의 하나로 활용될 수 있는 과학적 도구인 셈이다.

이러한 분석에는 고도의 분석기술이 필요하나 하수에는 수많은 유기물과 화학물질이 혼합돼 있어 극미량의 마약류 및 그 대사체를 검출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최근에는 고감도 질량분석기와 같은 첨단 분석기술을 활용해 메스암페타민(필로폰), MDMA(엑스터시), 합성 마약류 등 다양한 물질을 동시에 분석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 발전은 도시 단위의 마약 모니터링을 보다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물론 하수 기반 마약 모니터링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수 기반 마약 모니터링은 개인 식별이 불가능한 방식인 만큼 직접적인 단속 수단으로 활용되기에는 한계가 있고, 하수 희석 정도, 인구 유동, 물질별 대사율 차이 등 다양한 보정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의료용 사용이나 산업적 배출 등 외부 요인을 구분하기 어려운 점 역시 한계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수 기반 마약 모니터링은 마약 문제를 보다 넓은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예방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실제로 여러 국가에서는 이 데이터를 활용해 마약 예방 정책, 교육 프로그램, 단속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서울 역시 이러한 과학적 모니터링 체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도시의 하수 속에는 시민 건강과 사회 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보이지 않는 위험 신호를 조기에 읽어낼 수 있다면, 마약 문제에 대한 대응도 보다 체계적이고 선제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하수 속 데이터는 단순한 오염물 분석을 넘어 도시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공중보건 지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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