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발성 폐섬유증(IPF)을 동반해 폐암 치료가 어려웠던 환자에게 양성자 치료가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존 엑스선 방사선 치료는 폐섬유증으로 이미 손상된 폐에 추가적인 부담을 줘 중증 폐독성 위험이 높았지만, 양성자 치료는 정상 폐 조직에 전달되는 방사선량을 줄여 치료 안전성을 높일 가능성이 확인됐다.
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학과 표홍렬·노재명·양경미·신현주 교수 연구팀은 특발성 폐섬유증을 동반한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양성자 치료의 안전성과 치료 성적을 전향적으로 평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방사선종양학 분야 국제학술지 'Radiotherapy and Oncology' 최근호에 게재됐다.
특발성 폐섬유증은 특별한 원인 없이 폐 조직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가는 만성 진행성 폐질환이다. 폐암 발생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폐암이 발생하더라도 치료 과정에서 심각한 폐독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적극적인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기존 엑스선 방사선 치료에서는 특발성 폐섬유증 환자의 중증 폐독성 발생률이 20~50%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돼 치료 선택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치료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양성자 치료에 주목했다.
양성자 치료는 양성자가 특정 깊이에서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방출하는 '브래그피크(Bragg peak)'라는 물리적 특성을 이용한다. 종양 부위에 방사선을 집중시키면서 종양을 지나 주변 정상 조직에 전달되는 불필요한 방사선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팀은 2020년 6월부터 2023년 8월까지 특발성 폐섬유증을 동반한 비소세포폐암 환자 41명을 대상으로 양성자 치료의 안전성과 치료 효과를 전향적으로 분석했다. 환자들의 중앙 연령은 70세였으며, 폐 확산능(DLCO)은 정상의 약 45% 수준으로 이미 폐기능이 상당히 저하된 고위험군이었다.
그럼에도 초기 폐암 환자에서는 비교적 안전하게 양성자 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폐암 환자 32명 가운데 3등급 이상의 중증 폐독성이 발생한 환자는 3명으로 9.4%였다. 기존 엑스선 방사선 치료에서 보고된 20~50%의 중증 폐독성 발생률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치료 효과 역시 확인됐다. 초기 폐암 환자의 1년 생존율은 80.6%, 전체 환자의 1년 국소 종양 제어율은 93.2%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양성자 치료의 낮은 폐독성 위험이 정상 폐 조직에 전달되는 방사선량을 줄이는 물리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발성 폐섬유증 환자는 정상 폐의 여유가 적기 때문에 적은 양의 방사선 노출도 심각한 폐독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정상 폐 조직의 방사선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치료 전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모든 환자에서 양성자 치료가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진행성 폐암에서는 중증 폐독성 위험이 높게 나타났다.
3기 폐암 환자 9명 가운데 4명에서 3등급 이상의 중증 폐독성이 발생해 발생률이 44.4%에 달했다. 특히 특발성 폐섬유증 자체가 중증 단계(GAP 2~3기)이면서 3기 폐암을 가진 환자에서는 중증 폐독성 발생률이 57.1%까지 높아졌다.
항암제를 방사선 치료와 함께 사용한 환자군에서도 폐독성 발생률이 50%로, 방사선 단독 치료군의 6.5%보다 높았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진행성 폐암이나 중증 폐섬유증을 동반한 환자의 경우 단순히 양성자 치료를 적용하기보다 환자의 폐기능과 폐섬유증 중증도, 암의 병기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한 경우 다학제 논의를 통해 완화 목적의 방사선 치료나 항암 단독 치료 등 다른 치료 전략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노재명 교수는 "특발성 폐섬유증을 동반한 폐암은 치료 자체가 어려워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영역"이라며 "이번 연구는 초기 환자라면 양성자 치료로 안전하게 완치를 시도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동시에 어떤 환자에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지 기준까지 함께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표홍렬 교수는 "특발성 폐섬유증 환자에게 방사선 치료는 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결정이었다"며 "병기와 특발성 폐섬유증 중증도를 함께 고려한 맞춤형 치료 전략을 세운다면 더 많은 환자가 치료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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