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으라는데 치료할 곳 없다"…응급의학과의사회, '수용 강제' 입법 제동

응급의료법 개정안 53건 쏟아져… "배후진료 없는 수용 의무는 곧 환자 안전 위협"
법적 면책·상급병원 과밀화 해소·최종치료 인프라 확충 촉구…5개년 발전계획은 참여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이 잇따르는 가운데 응급의학과의사회가 응급환자 수용 의무만 강화하는 방식의 입법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환자를 받으라고 강제하기에 앞서 수술과 입원, 중환자 치료 등 실제 최종치료가 가능한 의료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KEMA·회장 이형민)는 30일 열린 2026 KEMA 학술대회 기자회견에서 최근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응급의료 관련 법·제도 개편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응급의료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의사회에 따르면 2025~2026년 국회에서 발의됐거나 대안에 반영된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총 53건에 달한다. 주요 내용은 응급실 수용 및 전원체계 개선을 비롯해 구급차·이송 인프라 관리, 응급의료기금 지원, 의료인력 처우 개선, 의료취약지 지원, 자동심장충격기(AED) 설치 확대, 의료사고 형사면책, 응급실 안전 및 정보공개 등이다.

문제는 다양한 입법 가운데 환자 수용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이 응급의료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의료진과 병원에 또 다른 책임만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응급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뺑뺑이'의 원인을 단순한 응급실 병상 부족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게 의사회의 설명이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수용하더라도 이후 수술이나 입원, 중환자실 치료 등 최종진료를 담당할 의료진과 병상이 없다면 환자를 적절하게 치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사회는 "응급실 수용 거부는 '배후 진료 능력'의 부재에서 발생한다"며 "이미 수용능력을 초과한 응급실에 환자를 강제로 밀어 넣으면 기존 환자와 신규 환자 모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당한 수용곤란 사유' 법제화도 현실과 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응급의료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서도 현장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시행령안은 응급의료기관의 시설·장비·인력이 모두 운용 중이거나 중증응급환자에게 최종진료를 제공할 인력이 다른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경우, 재난 등으로 환자 수용이 불가능한 경우 등을 '정당한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응급실에서는 환자의 상태와 의료진·병상 상황이 실시간으로 변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설이나 인력 부족을 수용 불가능한 상태로 판단할 것인지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는 게 의사회의 지적이다.

의사회는 모든 응급상황을 법령이나 시행규칙에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결국 사후적인 유권해석이나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받지 못한 이유를 사후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의료진 개인에게 법적 책임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 이송망과 응급의료 정보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급차 위치와 각 의료기관의 응급실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더라도 실제 환자를 수술하거나 입원시킬 의료진과 병상이 없다면 최종치료까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응급실 대기시간이나 진료·검사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 역시 현장에서는 추가적인 행정부담과 함께 정보 입력과 실제 상황 사이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책임 문제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수용 의무 강화하려면 의료진 법적 보호장치도 필요"

의사회는 또 응급환자 수용 의무를 강화하려면 선의의 응급의료행위에 대한 의료진 보호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회장은 미국의 응급의료제도인 EMTALA를 사례로 들며 "응급환자에게 의학적 선별검사와 안정화 처치를 제공하도록 하는 동시에 병원의 역량을 넘어서는 경우 적절한 절차에 따라 전원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국내에서도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 응급의료를 수행했음에도 불가피한 결과가 발생할 경우 형사책임까지 부담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응급의료행위까지 형사책임의 위험을 부담하게 되면 의료진이 방어진료를 선택하거나 응급의료 현장을 떠나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회는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우선적으로 법적 위험성 감소, 상급병원 과밀화 해소, 취약지역 및 최종치료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을 것인지 여부만을 규제하기보다 환자를 받은 이후 실제 치료가 가능하도록 전문인력과 병상, 수술·중환자 진료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상급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는 구조를 개선하지 않은 채 응급환자 수용을 강제할 경우 대형병원의 과밀화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회장은 "현장의 전문가들과 상의하지 않고 임상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정책은 절대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보건당국과 국회는 실효성 없는 징벌적 입법을 중단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하반기 논의가 시작될 예정인 향후 5개년 응급의료 발전계획 수립위원회에 현장 전문가 자격으로 공식 참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응급실 수용과 전원 문제뿐 아니라 배후진료 역량, 의료진의 법적 책임, 지역별 최종치료 인프라 등을 정책 설계 단계부터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