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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약 100년 소사(61)

‘고발산고(産苦)겪고 옥동자 된 종근당 항생제

’67년 ‘테트라싸이클린’발효공장 첫 삽 강행
모 경쟁社, 진정서→밀수고발→언론플레이까지
장기송사 진통 끝, ’73년 3월 ‘대승적 제2도약’

항생제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높았다. 제약사는 물론 의사· 약사들도 판매에 열을 올리고 환자들도 마이신으로 불렸던 항생제를 습관처럼 마구 사먹었다. 오죽하면 항생제 오남용을 막자고 의약분업을 실시했을까.이처럼 항생제 인기가 대단하다 보니 제약사간의 이권다툼도 치열했다. 70년대 일어난 종근당 ‘테트라싸이클린’ 합성 분쟁도 이같은 이유에서 발생했다.
초기 국내 제약사에서 항생제 분야의 선두주자는 단연 종근당이었다. 종근당은 항생제 원료 합성공장을 완료하고 100% 국산화 실현을 위해 발효공장 건설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이때가 67년 이었다.

이종근 반대 불구 시도
종근당은 이종문(전무)을 각국에 파견,발효 공장을 시찰하도록 했다. 귀국한 이종문은 막대한 투자로 공장을 건설해도 원가에서 국제경쟁력이 없다는 비관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또 시장확보 역시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창업주 이종근은 국산 항생제 100% 달성을 위해 발효공장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69년 종근당은 이탈리아 제약사들과 비밀리에 공장건설에 따른 기술협조와 기계·자재 구입 등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 시켰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암초가 나타났다.
종근당에 앞서 테트라싸이클린 발효공장을 준비 중이던 모 사(69년 한미합자회사로 설립됐으며 현재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다국적 제약사로 성장했다)는 71년 6월 경제기획원에 테트라싸이클린 중간원료가 국내에 과잉 수입되고 있으니 이를 제한해 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모 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그해 10월에는 테트라싸이클린 중간원료의 수입을 전면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11월 모 사는 테트라싸이클린 발효공장을 가동, 원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모 사는 진정서를 제출한 것은 한미합자회사 설립을 인가한 당국과의 서면약속에 의한 것이었다며 그 내용을 공개했다.
“경제기획원은 생산된 품질이 국제 품질 기준에 달하고 국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음이 확인되면 정부가 이를 무역 계획에 반영할 것이며 이에따라 수입을 억제할 것이다. 또한 보건사회부는 생산된 제품의 품질이 국제 기준에 달하고 국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가격이 적절할 때 중간 원료의 수입을 금지할 것이다.”

국가헌납 비장한 각오
이같은 약속은 정부가 외국 자본의 국내 유치를 권장 했기 때문이다. 중간원료의 수입이 전면 중단될 경우 종근당은 도산의 위기에 빠지게 돼 사활을 걸고 이를 제지 하지 않으면 안됐다. 국제시세에 비해 월등히 높은 모 사의 중간원료를 구입할 수밖에 없어 해외수출에 차질이 빚어지고 국내 시장에서도 완제원료를 다른 제약사에 공급할 것이므로 내수시장의 판매도 막히게 되기 때문이다.
거액을 들여 합성공장을 준공했고 미국의 FDA 허가를 받아 일본에 원료를 수출하는 한편 국내 제약사에 완제 원료를 공급해 오고 있던 종근당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빠져든 것이다.
이에 종근당은 이종문을 중심으로 박영호 박해룡(현 고려제약사장) 두 상무와 김재승(부장)김석찬(고문) 등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만약 모 사의 요구대로 결정이 될 경우 종근당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며 비장한 결의를 다졌다. 수년전에 시설을 완비하고 국내 수요는 물론 해외수출로 외화를 벌어 들이던 종근당은 국내 산업을 보호하지는 못할 망정 국내사를 도산시키려는 이런 정책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며 벼랑끝 대치를 선언했다.
그러자 한미합자회사의 설립 허가를 받았으나 아직 보사부로부터 항생제 원료생산 허가를 받지 못한 모 사도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5톤 규모에 이르는 생산원료를 한강에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71년 정부는 품질 생산량 가격 등 수입을 금지해도 무방하다고 인정될 때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했으며 모 사에게는 테트라싸이클린 원료를 생산 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줘 양쪽을 무마시켰다.
당분간 수입이 가능하게 되자 종근당은 모 사의 생산능력과 가격을 감안, 앞으로 2년내에 발효공장을 세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획아래 공장건설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사는 재경부에 수입중간 원료에 대한 높은 특관세를 부과해 모 사의 제품을 보호해 달라거나 킬로그램당 2만3,900원으로 인정받게 되자 제품의 가격보호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당시 테트라싸이클린 국내 소요량은 45톤에서 연간 30%씩 성장해 72년에는 무려 58톤이 필요했다.
하지만 모사는 겨우 28톤의 생산능력밖에 없었으므로 수입금지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 사는 분규를 더욱 격화시켜 경제기획원은 물론 재무부 보사부 국무총리실 대통령비서실 등에 생산능력이 연간 40톤으로 28톤은 착오라며 진정서를 잇따라 제출했다.

11개업체, 종근당 편들어
종근당을 필두로 테트라싸이클린 원료로 제품을 생산하는 동아제약 한양약품 한독약품 대영제약 태평양화학 안국약품 태광화학 건민약품 동광약품 고려은단 대한중외제약 등 11개 업체는 이의 부당함을 보사부 등에 진정했다. 그러나 모 사는 72년 8월 종근당과 국제약품을 밀수혐의로 고발하기까지 했다.
한국인 대표이사와 미국인 대표이사 공동명의의 고발을 접수한 관세청은 그해 11월 관계서류 일체와 공장과 창고의 모든 테트라싸이클린 중간원료를 봉인했다. 그리고 박해룡 (상무) 이영호(상무)를 임의 출두 형식으로 연행하고 11,12일 양일에 걸쳐 기술과 생산공정에 관한 현황과 수입절차를 조사했다.
이 검증 결과는 9월 8일과 12일에 나올 예정이었는데 모 사는 이에 앞서 고발의 결과가 뜻한 바대로 종근당의 밀수사건으로 나타날 것으로 미리 믿고 신문에 보도 자료를 작성해 배포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매일경제 등이 이 사건을 보도해 영문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종근당을 범죄 기업으로 생각하기까지 했다. 마침내 결과가 나왔다. 보건연구원은 종근당의 테트라싸이클린 중간원료를 분석한 결과 밀수품이 아니라는 검인 검정 결과를 관세청에 통보했다.
그러나 KIST는 12일 밀수품일 수도 있다는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결국 검찰까지 간 이 문제는 73년 3월에 밀수 협의가 없다는 것으로 최종 결판났다. 사건이 불기소 처분으로 일단락되자 종근당은 그동안 수집한 모 사의 부조리와 비행을 근거로 역공세를 취하거나 무고죄 고발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종근은 그동안 우리가 당한 피해를 생각하면 엄벌에 마땅하지만 모 사측이 정식 사과와 화해를 요청해 오자 8억 7,000만원에 이르는 손해 배상 청구도 취소했다.
합자회사의 기고만장한 태도에도 대국적인 견지로 화해한 이종근은 훗날 “괘씸한 것을 생각하면 모 사가 처해오는 화해에 응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며칠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을 생각했고 어머님이 늘 말씀하시던 예수의 교훈을 떠올렸다. 7월 어느날 나는 모사의 사장과 시내 안국동의 한 요정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는 관직에 있던 모 원장과 송동환 사장 이종만 사장 김승일 사장 우대규 사장 및 그 외 3-4인이 더 있었다. 모 사의 조모 사장은 정중하게 사과 했다. 나는 몇 마디 꾸짖고 아무말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를 용서했다.” 이로써 1년 8개월에 걸친 길고긴 모해 사건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