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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마, 사상의학 집대성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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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2 08:12:16

고종 31년 ‘동의수세보원’4권 2책 간행


‘의방활투’와 ‘의종손익’을 합본해 만든 ‘방약합편’은 현재에도 한의사들의 필독서로 읽힐 만큼 가치가 크다. 황도연(黃道淵,호 惠庵)의 아들 필수가 증보해 만든 이 책의 서문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혜암공이 쓴 의학책이 매우 많으나 모두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다만 의사들로 하여금 병을 빨리 치료할 수 있도록 책을 편찬하기에 힘썼다. 이것은 사람들의 생명만을 위하고 자기를 낮춘 것이다.


증세겷낱æ 자세히 기록


선생이 쓴 의학책 들 중의 하나가 ‘의방활투’ 인데 그 내용이 간명하면서도 활용범위는 넓으며 또 체계가 조리있고 명확해 이 책을 한 번 보기만 하면 누구나 병의 증상에 따라 약을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의학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한 책만을 구해두려 하였다. 다만 인쇄한 책부수가 많지 못해 안타까워 했다.
... 사람들의 요청이 너무 간절해 이 책의 편찬에 착수했다. 이때 선생의 나이는 이미 77살 이어서 자기가 직접 쓰지 못하고 내가(아들) 받아 쓰게 됐다.
이 책의 체제는 왕인암의 ‘본초비요’와 ‘의방집해’를 한데 합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전에 쓴 ‘의종손익’의 본초를 위에 놓고 약을 쓰는 원칙과 구급법,금기법 등 10여가지를 첨부했다. 그리고 이 책의 이름을 ‘방약합편’이라고 했다.
...의술이 높은 의사라면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 약을 먹지 않고 있다가 그해 8월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선생의 인자한 마음을 회상해 주기 바란다”고 적고 있다.
책의 서문에 밝힌대로 책에는 증세와 그에 따른 약 처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예를 들면 중풍의 경우 풍이 6부에 들었을 때 소풍탕 (중2),풍이 5장에 들어(중장)대소변을 누지 못할 때 자윤탕 (하1) 하는 식으로 적고 있어 당시 의학자들의 필독서로 읽힐 수 밖에 없었다.


한번 보면 처방 가능


공진단의 경우 “본래부터 체질이 허약한 사람에게 쓰면 타고난 원기를 든든하게 하며 온갖 병이 생기지 않게 한다. 가루내어 술을 두고 쑨 밀가루 풀에 반죽해 벽오동 씨만하게 알약을 만든다. 1번에 70~100알 씩 데운 술이나 소금을 두고 끓인 물로 먹는다. 달여 먹어도 좋다”고 했다. 지금도 공진단의 경우 강남 일대에서는 수백만원에 팔리고 있다.
조선말 초기의 의약학은 황도연과 그의 아들 황필수의 업적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황도연의 의종손익(醫宗損益)에 나오는 약성가는 ‘수세보원’에서 360수, ‘제중신편’에서 80수를 인용하고 이를 황도연이 73수를 새로이 첨가했다. 제중신편에서 인용한 것은 제(濟),새로이 첨가한 것은 증(增) 당약은 당(唐)이라고 출처를 밝히고 있다.


김영관곀祺澍ЮÌ 완간


1894년(고종 31년) 이제마(李濟馬)는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내놓는다. 활자본 4권 2책으로 구성됐으며 간행을 거듭하다 저자가 죽은 후 1901년(광무 5)에 그의 제자인 김영관(金永寬), 한목연(韓穆淵)등이 유고를 정리해 완간했다.
처음으로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집대성 했다. 즉, 사람의 몸은 그 기질과 성격의 차이에 따라 태양(太陽) 소양(少陽) 태음(太陰) 소음(少陰)의 4가지 사상으로 나누고 그 체질에 맞게 질병을 치료해야 하고 약방(藥方)도 달리해야 한다는 색다른 의설을 주장했다.
이 사상의학설은 기존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우주나 인간의 모든 현상을 음, 양 두 원리의 소장(消長))으로 설명하는 음양설과 이 영향을 받아 만물의 생성소멸을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의 변전(變轉)으로 설명하는 오행설을 묶어 이르는 말.)에 의한 의학과는 그 치료법이나 질병을 이해하는 과정이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만 있는 의설로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증증보다 체질 중점


성명론(性命論) 사단론(四端論) 확충론(擴充論) 장부론(臟腑論) 의원론(醫源論) 광제설(廣濟說) 사상인변증론(四象人辨證論)의 7편으로 나누어 각각 그 의방과 치방을 서술했다. 질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증증(症證) 보다는 오히려 체질에 중점을 두고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사상은 주역(周易)에서 나온 말로 태극(太極)은 음양(陰陽)을 낳고 음양은 사상(四象)을 낳는다고 한 데서 유래된 것이다.
이를 체질로 구분해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 체질에 따라 병리 생리 약리 상생법과 음식의 성분에 이르기 까지 분류했다. 또 사상인에 따라 같은 병인이 작용해도 각기 다른 병증상이 나타나므로 치료를 개별화 해야 하고 약물작용도 다르므로 그에 따른 체질형에 맞게 약을 쓰도록 처방을 새롭게 해 치료효과를 높이도록 하고 있다.
원래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예방의학에 치중한 면이 없지 않으나 병과 약의 개념을 병리와 약리에 두기에 앞서 인간의 윤리적 선(善)의 문제에 두어 선을 추구하는 마음의 수양이 중요하고 그 다음은 식생활에서 체질에 맞는 음식을 선택해 먹어야 하는 예방의학을 강조했다.
이제마 선생은 허준의 동의보감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 책을 쓴 것으로 후대인 들은 보고 있다. 허준은 동의보감의 서문에서 “ 중국에도 북방의학 남방의학 전통이 다르고 북방에 사는 사람의 병과 남방에 사는 사람의 병이 다르므로 의사들도 북방의사와 남방의사가 다르다.


군사서적에도 능해


하물며 중국의학과 한국의학은 지역적으로 풍토나 사람이 달라 같은 의학이 될 수 없고 같은 의사행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사람에게 맞는 의료행위를 위해 내가 이 책을 써 동의라고 한다.” 여기서 동의는 동양이 아닌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동의수세보원이라는 이름은 허준의 동의에서 참고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동무(東武)이제마 선생의 자는 무평(務平)이며 본관은 함흥이다. 어려서부터 경사자집(經史子集) 등 유교서적을 비롯해 의약과 복서(卜筮)에 능했으며 무인이 되기위해 군사관계 서적에도 능통했다. 1888년(고종 25년)군관직에 등용됐으나 곧 사퇴하고 1892년 경남 진해 현감으로 부임하기도 했다.


용마태몽, 제마로


1893년 사직하고 서울로 돌아와 사상의서 저술을 시작해 이듬해 역저 동의수세보원을 탈고했다. 그 뒤 고향에 들어가 1896년에 일어난 최문환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고원 군수에 추천됐으나 부임하지 않고 일생을 의학연구와 후학을 양성하는데 보냈다.
한편 그의 탄생과 관련 해서는 부친이 어느 날 술에 취해 주막에 묵게 됐는데 늙은 주모의 과년한 딸이 인물이 박색할 뿐만 아니라 사람됨이 변변치 않아 시집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에 주모가 이 진사의 방에 딸을 들여 보내 하루 밤을 묵게 했고 열달 후에 할아버지 충원공이 태몽을 꾼다. 제주도에서 가져온 용마를 얻는 꿈이었는데 어떤 여인이 강보에 쌓인 아기를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해서 제마로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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