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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합성마약 .똥약사건 약업계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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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2 08:42:06

메사돈 함유제품 제조 23개업체 폐쇄조치
밀가루 섞인 불량항생제로 국민불신 확대


박정희의 철권 통치가 더욱 힘을 발휘할 즈음 한국은 본격적으로 월남전에 뛰어든다. 65년 1월 국무회의는 비전투병 2,000명을 월남에 파병하고 9월에는 맹호·청룡 등 전투병력을 투입한다. 그해 7월에는 하와이로 도망간 독재자 이승만이 죽는다. 당시 한국은 정치·경제적으로 격변이 소용돌이 중심에 있었고 약업계도 이에 질세라 커다란 두 사건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다.


정체불명 ‘약’ 출현


소위 합성마약인 ‘메사돈’과 ‘불량 항생제’ 사건이 그것이다. 65년 신문을 비롯한 라디오 등 방송은 중독성을 지닌 정체 불명의 약이 출몰 하고 있다고 크게 보도 했다. 이 정체 불명의 약은 전북 어촌이나 충청도의 산간벽지는 물론 경북·강원 심지어는 서울에 까지 나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중 전남 지역의 섬에서 가장 피해가 컸다.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온 어부들이 제일 먼저 찾는 것은 밥이 아니라 바로 맞으면 신통하게도 피로가 풀리고 힘이 나는 주사제 였다. 들에 나가 일하는 농부가 쉬지 않고 계속 일 할 수 있는 것은 막걸리나 밥이 아닌 광주리에 몰래 숨겨온 주사약 때문이고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주사를 맞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전해졌다.
보사부도 더 이상 이를 방치 할 수 없었다. 약정국은 부정 진통 주사제 특별 단속에 나서 영남화학의 ‘썰리린’ 주사액과 동국제약의 ‘베나드린’의 제품을 허가 취소했다. 당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문제가 된 약을 수거해 보건연구원과 시·도 위생시험소에 검정을 의뢰 했으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사태는 점점 악화됐다. 국회도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국회는 오원선 보사부 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상황과 대책을 따져 물었다. 하지만 정확한 약의 성분을 가려내지 못했다.
보사부는 무능하다고 연일 질타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내무부 산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었다. 이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던 이창기(전 보사부 약정국장) 약사는 이물질이 단순한 약물이 아닌 합성마약의 일종인 ‘메사돈(Methadone)’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약사는 전남 나주 출신으로 서울약대를 졸업하고 화학연구소에서 2년간 근무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이같은 개가를 올렸다. 그는 페이퍼크로마토 그라프를 이용해 메사돈만을 순수하게 분리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메사돈의 공급원을 추적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창기 약사 ‘개가’


메사돈은 ‘4·4-디페닐-6-디메틸 아미노-3-헤프타논’이라는 화학명을 가진 마약으로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서 합성 됐고 모르핀과 같은 진통작용이 있었다. 모르핀과 부작용이나 진통작용은 비슷했으나 중독이 늦고 금단작용이 완만해 많은 사람들이 그 해악의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했다. 제일 먼저 유니온 제약이 적발됐다. 유니온은 ‘설파 디메톡신’에 메사돈을 넣었고 바로 폐쇄 조치 됐다. 잘 나가던 금강제약이 47년 항생제 ‘후르덱신’ 사고로 문을 닫은 것과 흡사했다. 유니온제약을 폐쇄 시킨 당국은 곧 20여종의 약품에서도 메사돈이 검출돼자 수사망을 확대했다.
약업계는 국민의 불신을 피해 나갈 수 없었다. 보사부는 들끓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이물질을 함유한 제품을 만들던 23개 제약사를 폐쇄 조치했다. 이 사건으로 그해 5월 전병수 약정국장이 불명예 퇴진하고 허용 약무과장이 약정국장으로 승진했다.


전병수 약정국장 ‘퇴진’


허 국장은 취임하자마자 마약과장을 비밀리에 충북 청주로 내려보내 부정약품 19만 갑을 회수해 오도록 했다. 부정의약품을 만들었던 많은 제약사들의 제품이 회수·폐기되고 회사는 문을 닫았다.
청주에서 압수된 19만 갑은 국도제약의 ‘염산프로카인’ 주사제였고 영남화학의 비타민 B1과 ‘설피린’, 백십자약품의 ‘키니힌’ 등도 메사돈이 들어 있었다. ‘국과수’에 선수를 빼앗겨 의기 소침해 있던 보건원은 페이퍼크로마토 그라프 방식이 아닌 ‘유기화학분석’으로 메사돈을 검출해 내 체면을 세웠다. 정부는 65년 7월 1일 이같은 일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의약품 등 제조업소의 시설기준령’(대통령령 제 2170호)을 공포했다. 이 기준령은 그때까지 누구든지 허가만 받으면 제약업을 할 수 있던 것을 일정 수준(100평방미터) 이상의 시설을 갖춘 업소만 제약업을 할 수 있도록 고쳤다. 하지만 이것으로 부정 불량 의약품을 근절할 수는 없었다.
메사돈 사건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번에는 ‘밀가루’ 항생제 사건이 터졌다. 메사돈으로 더 이상 돈벌이를 할 수 없었던 악덕 제약업자들은 이번에는 항생제에 밀가루를 첨가해 함량 부족인 항생제를 생산해 차익을 남기고 있었다.
당시 항생제는 그동안 전량 수입해 오던 것을 국산으로 거의 전부 대체할 시기 였으며 국민들은 항생제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겨 항생제 매출이 크게 늘고 있던 때였다. 테트라사이클린과 클로람페니콜 등이 주종이었고 국민들은 대개 ‘마이신’이라는 이름으로 항생제를 구입했다.


만병통치 ‘마이신’


제약사들은 수입한 항생제 원료를  캡슐에 넣어 상표를 붙이기만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항생제에 큰 매력을 느꼈다.
각 제약사들이 너나 없이 항생제를 수입해 왔고 따라서 경쟁은 치열했다. 원료를 확보한 제약사들은 100캡슐 1병에 1,000원을 팔아도 이문이 없는 것을 300-400원에 내다 팔았다. 약정국은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 항생제 30여종을 긴급 수거, 성분 함량 분석에 들어갔다. 8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즈음 놀라운 사실이 또 한번 업계를 뒤 흔들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당시 항생제 허용 범위는 90 -110 % 였으나 항생물질이 50-60%,심지어는 10%밖에 들어 있지 않아 거의 효과가 없은 이른바 ‘똥약’ 이 유통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엄청난 인기, 과당경쟁이 불러온 또 한번의 대형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서울의 범양양행 남방약품 효성제약 대풍신약 원풍제약 대구의 청송제약 충남의 동양신약 등 7개사가 허가 취소돼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비운을 맞봐야 했다.
한편 남방약품은 업이 취소처분을 받게 되자 “함량이 부족하면 그 품목만 허가 취소해야지 다른 품목과 제조업까지 허가 취소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결국 ‘품목마다 허가를 받는다’는 약사법 규정에 따라 남방약품이 승소했다.


국민불신 해소 ‘진력’


그러자 보사부는 한 품목만이라도 현저하게 함량이 부족하거나 약사법에 위배 될 때는 제조업 허가까지 취소할 수 있도록 약사법을 개정했다. 밀가루 항생제 여파는 오래갔다. 부평에 있던 한 미군의료기관은 ‘국산 항생제의 역가가 1/20도 안된다’고 발표해 어수선한 분위기는 쉽게 가라 앉지 않았다.
합성마약에 똥약사건 까지 벌어지자 국민들의 약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항생제 뿐만 아니라 당시 인기가 있었던 아미노산제제나 아스피린 심지어 다른 모든 약들도 함량을 속여 약을 팔고 있다는 의심을 샀다. 보사부는 부실한 제약업체들을 정리하고 시설기준 강화, 사후관리 등으로 약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는데 안간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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