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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사치품’ 규정, 달러배정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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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2 08:42:50

너도나도 비타민제 생산 판촉전 과열
약공, 64년 자정노력 일환 광고중지 결의
매출급감 업체반발로 실효거두지 못해


합성마약 ‘메사돈’ 사건, ‘밀가루’ 항생제 제조·판매 등으로 국내제약사들이 ‘사회혼란’을 일으키고 있을 65년을 전후로  외국의 제약사들은 약업사에 길이 기록될 굵직한 신약들을 잇따라 내놓기 시작했다. 이들 신약들은 ‘질병으로부터 인류 구원’이라는 대명제를 실현하는데 한발 앞장섰다.
63년 미국의 업존은 ‘린코마이신’을 개발했다. 미국 네브래스카의 린콜린 토양에서 발견·분리돼 이같은 이름이 붙여 졌으며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수막염 등 그람양성균 및 일부 음성균에 효과가 있는 항생제로 발견 당시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다.


외국사들 잇따라 신약출시


이 해에 미 FDA는 우수의약품 제조 기준인 GMP를 제정했다. 영국의 비참사는 페니실린계 항생제 ‘암피실린’을 내놓았다. 65년 미국의 릴리사는 항생제 ‘세파로틴’과 ‘BCG 백신’을 개발했다. 독일의 쉐링은 항생제 ‘겐타마이신’을 선보였다. 겐타마이신은 아미노글리코사이드계 항생제로 그람양성군 포도상구균과 그람음성균 중 대장균 살모넬라균 및 변형균 녹농균 등에 적응증을 보인다.
67년에는 레더리사가 데메크로싸이클린에서 ‘미노싸이클린’을 릴리는 ‘세팔렉신’을 비참은 ‘카르베니실린’, 와이어스는 ‘시쿠라실린’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또 ICI는 고지혈증치료제 ‘크로피브레이트’를 개발했고 글락소는 ‘베타메타손’을 세상을 내놓았다. 68년 레페티드는 리파이신 SV에서 ‘리팜피신’을 개발했다.
69년에는 유럽약전이 제정됐고 WHO(세계보건기구)는 각 제약사들에게 GMP 설치를 권장했다. 69년 부쓰사는 소염진통제 ‘이부프로펜’을 글락소는 항생제 ‘세랄렉신’을 최초로 개발했다. 세계 제약사들의 본격적인 신약개발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의 반열에 들어가기에는 여러 면에서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미 FDA의 공인을 얻은 종근당 등이 주축이 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항생제 원료 의약품 수출을 감행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에따라 65년에는 137만달러 69년 3,468만 달러 어치의 의약품을 수출했다.
67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대규모 시설을 갖춘 업소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에따라 의약품 생산액은 크게 증가했다. 규모별로 보면 총 제조업소의 6.2%에 불과했던 19개사가 연간 1억원 이상 어치의 의약품을 생산해 전체 총생산액의 82%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컸다. 규모가 커지면서 제조업소수는 크게 줄어 들었다.
메사돈과 밀가루 항생제 사건으로 당국의 의약품 단속이 강화된 것과 맞물려 나타난 파급효과 였다. 64년 업소수 482개소, 품목 허가 수 1만 447개에 달하던 것이 7년 후인 71년에는 제약사수가 271개, 품목 허가수는 3,076개로 감소했다. 군소업체가 소멸하고 소수 대기업만이 살아 남게 되자 이들간의 치열한 판매 다툼은 판촉비용의 과다, 이윤의 감소로 이어져 제약산업의 성장에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제약사들은 치료면에서 꼭 필요한 ‘약전약’의 생산을 기피하고 이윤이 많이 남는 약의 생산에만 골몰하기도 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여기에는 정부 당국이 의약품을 화장품이나 술과 같은 ‘사치품’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한 몫을 담당했다. 당시 약업계는 미국의 달러 원조가 줄어 들면서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하게 됐다. 64년 외환 수급과 관련 보사부는 의약품 구매용으로 1,161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경제기획원에 요청했다.
그러나 이 금액은 협의과정에서 700만달러, 600만 달러로 줄고 다시 500만 달러 선에서 검토되는 등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에 약품공업협회 전규방 회장은 의약품에 대한 달러 배정이 줄고 있는 것은 당국이 의약품을 사치품으로 생각하는 부정적 시각 때문이라고 판단해,보건제(保健劑) 광고에 대한 자숙을 업계에 호소했다.
이같은 전회장의 호소가 아니더라도 당시 약 광고는 신문 라디오 등을 통해 ‘만병통치제’인 것처럼 연일 쏟아져 나왔고 광고물량에 비례해 약의 판매도 늘어났다. 특히 비타민제 앰플 내복약의 광고는 대단했다.
현 대웅제약의 전신인 대한비타민은 TV광고에 대한비타민 CM송을 만들어 불렀으며 사회자나 출연자를 통해 효능을 설명하는 등 대대적인 판촉 활동을 벌였다.
CM 송의 내용은 “비타-민 비타-민 대한 비타 민,오 늘은 명랑하게 내 일은 씩씩 하게, 비타- 민 비타- 민 대한 비타 민, 아버- 지는 오르비타 어머- 니는 미용 비타, 어린이 우리는 대한 간유 구, 대한 비타 민”이었다. 당국은 비타민제를 사치품으로 규정하고 신규허가는 물론 원료 배정에서 누락시켰다.
이에 약공은 텔레비전 라디오 등 전파 매체 광고를 자숙하기로 하고 삼일제약 종근당 동아제약 건일약품 천도제약 유유산업이 참여해 세부 방안을 마련할 7인위를 구성했다.
이들은 당국이 비타민제 등을 사치품으로 규정한 이상 ‘치료제인가 사치품인가’하는 논의는 무의미 하다고 판단하고 모든 전파 매체는 물론 일간지 잡지 등에도 광고를 하지 않기로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제명 등으로 강력히 징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64년 1월 약공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2월 1일부터 약광고는 전면중지됐다. 당시 TV 라디오의 전체 광고 중 약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문화방송 65% 동아방송 50% 였고 신문광고는 56%를 점하고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방송광고 절반이상 약광고


하지만 약공의 광고 중지 결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광고를 중지하자 매출이 뚝 떨어진 업체들이 산발적인 광고를 하고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약공은 광고를 계속한 2개 업체를 제명 처분하고 13개 업체에 경고문을 발송했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약의 난매도 극심했다. 이에 약공은 전 회원에게 난매를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고 특정 지역에는 조사단을 파견해 현황을 파악하고 당국에는 난매 제품의 품질관리를 의뢰하는 등 다각적인 대응책을 모색 하기로 했다.
65년 11월 약공 상임역과 경북도매협회장 등 6명은 거래 질서 확립을 위해 연석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지급기일 45일제의 실시와 연 % 및 할증제 폐지, 주재원의 직매 행위 지양 등을 합의했다.
또 자양강장제를 비롯한 일부 의약품에 대한 물품세 문제, 할인 할증에 대한 과세 대상 책정에 대해서도 대책을 숙의하는 등 제약사들의 이익단체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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