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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승패 제약사 사활 맞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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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2 08:53:57

동   아=활력을 마시자-박카스D, 기사회생
종근당=당신은 잠… 하면서, 지명도 높여
보   령=이 소리가… 습니다, 유행어 창조


제약사들의 ‘현란한’ 광고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히려 광고 규제를 받지 않았던 과거가 더욱 세련된(?) 기교를 부렸다고나 할까.
동아제약의 박카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맛도 맛이지만 엄청난 광고량과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었던 그 무엇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활력을 마시자, 박카스- D’ 라는 간단 명료한 카피속에는 건강을 생각하게 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또 라디오 CM에서는 유명 배우 김희갑을 동원 “예, 제가 김희갑입니다. 그런데 제 직업이란 것이 밤낮없이 연달은 촬영에 과로하고 또 그리고 술고래가 돼 놔서~~헤헤, 어디 쉿덩어리인들 견딜 수 있습니까? 거 뭐니 뭐니해도 건강이 제일입니다. 네 그래서 말입니다요, 전 이렇게 박카스를 주머니에 아주 넣고 다니죠.”
이같은 광고 덕분에 박카스는 66년3,000만병 67년 4,600만병 68면 7,000만병의 기적적인 판매신장을 가져왔다.
박카스의 성공은 전적으로 고압적인 대량광고의 ‘힘’에 의해 이루어 졌다. 71년 6월에는 사이다와 콜라만이 있던 국내 청량음료 시장에 ‘오란씨’가 등장했다.
동아는 박카스 광고의 경험을 살려 물량작전으로 나갔다. MBC에는 ‘오란 쇼’가 신설됐고 사회는 후라이보이와 인기가수 정훈희가 맡았다. 폭발적인 반응이 일자 동아는 안양에 오란씨 공장을 별도로 세우기도 했다. 이때 등장한 오란씨 CM 송을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늘에서 별을따다 두 손 에-  하늘에서 달을따다 두 손 에- ,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란씨 오란씨 파인.” 현대 젊은이의 청각에 호소했던 이 광고는 국내 제약사 광고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광고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종근당 광고도 광고사에 빼놓을 수 없다.
종근당은 60~70년대 가난의 굴레를 벗고 새희망의 부자 나라를 꿈꾸는 사회 분위기를 적절하게 표현했다.
특히 국내 제약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성공적인 기업 이미지 광고를 내보냈다. 69년 이종문 전무의 창작으로 시작된 종근당 이미지 광고는 광고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기록되고 있다.
“당신은 잠들었어도 맥박을 뛰고 있습니다. 당신이 주무시는 한 밤에도 종근당의 연구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건강과 생명의 미래학을 추구하면서.” 그리고 종소리가 긴 여운을 남기며 들린다.
이 광고로 종근당은 기업 이미지 제고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지명도를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간결하면서도 격조높고 친근감 있는 이 기업광고 하나로 종근당은 역사가 훨씬 깊은 다른 기업보다 지명도 경쟁에서 앞설 수 있었다.
종근당은 그 후 의약품이 국내 최초로 미 FDA의 승인을 받은 것과 관련, “태극기로 이 지구를 덮을 길은 없는가?’ 라는 대담한 기업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동화약품은 자사의 간판 활명수를 TV광고 했다.
내용은 ‘여: 옛부터 우리는 자연의 조화속에서 건강을 조절하는 슬기를 익혀 왔습니다. 남: 자연 속의 순수생약을 과학적으로 배합해 제조되는 부채표 활명수는 오늘날 더욱 현대인의 애호를 받고 있습니다. 남:동화약품 활명수’ .
다른 제약사 광고에 비해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국민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외제약은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도 특이한 판촉으로 회사 지명도를 높이고 제품 매출을 크게 늘린 사례가 있다.
중외는 항생제가 돌풍을 일으키던 지난 70년 독자적인 항생제 ‘리지노마이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항생제 시장은 화이자의 ‘테라마이신’이 독주하고 있었고  저가 항생제로 ‘테트라싸이클린’이 있었으나 의·약사 들은 좀더 새로운 항생제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이때 중외제약이 2년여의 연구 끝에 새로운 항생제 리지노마이신을 개발한 것이다. 중외는 전 사원이 가슴에 리지노마이신이라는 표찰을 달고 거래처에서 제품을 설명해 선전 효과의 극대화를 노렸다.
또 당시 최고의 가수였던 이미자·김상희, 권투선수 김기수 등과 함께 지역을 순회 탐방하고 주간지에 병원탐방기, 약국탐방기 등의 기사식 광고로 리지노마이신의 지명도를 높여나갔다
이런 기발한 판촉으로 리지노마이신은 70년에 생산된 전 의약품 가운데 성장률 5위 항생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일동제약은 과감한 광고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스포츠 행사 그 중에서도 복싱 경기의 중계 광고를 도맡아 하면서 스포츠 하면 비둘기표 일동제약이 연상될 정도였다.
윤용구는 국내 최초로 세계를 제패한 권투선수 김기수에 이어 웰터급의 정영근 밴터급의 고생근을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권투선수 뒷바라지로 국위를 선양한다는 좋은 이미지를 쌓은 일동은 71년 세기의 대결로 일컫어 지는 해비급의 조프레이저와 클레이의 중계에 광고권을 따냈다. 250만원에 달하는 거액( 김기수 벤베누티의 라디오 중계료가 150만원이었다.)을 투자했다. 1회전이 끝날 때 마다 15초씩 광고가 나가는데 선수들이 무려 15회 까지 경기를 끌고 갔다.
일동은 ‘아로나민’과 ‘비오비타’ 광고로 큰 재미를 봤다. 이후 일동은 ‘의지의 한국인’ 시리즈로 회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두달에 한 번씩 각계 추천을 받아 부각시킨 그 개척정신과 도전의 주인공은 매일 1,700도의 용광로와 싸우는 16년 근 속의 고열작업자 인천제철의 정명운, 하루 5,000리의 창공을 나는 대한항공의 파일러트 이상두 부기장, 1800년이나 걸리는 계산을 단 10여 초만에 해내는 미모의 여 프로그래머,단 1초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 한국전력 급전 사령실의 노련한 시스템 오퍼레이터, 수만 톤의 철갑을 다루면서 세계의 기술에 도전하는 대한조선공사의 조선기사 등 12명이었다. 의지의 한국인 시리즈로 일동은 또한번 광고계의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구심과 기응환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던 보령제약은 용각산 광고로 일약 우수 제약사의 대열에 뛰어 들었다.” 한겨울이면 징을 울리려 골목골목을 누비던 굴뚝 청소부. 굴뚝 청소부가 없어진 것은 연료 근대화의 결과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연료 근대화가 몰고온 매연과 개스는 굴뚝 청소부의 애환과 애처로움 보다 훨씬 크고 심각한 위험과 비애를 안겨 주었습니다. 굴뚝 청소부가 사라지듯이 해로운 매연과 개스가 사라질 수는 없을 까요? 매연과 개스로부터 목을 보호합시다.”
73년에 TV 통해 선보인 “이 소리가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당시 인기성우 최응찬의 목소리에 실렸던 이 카피는 미세한 분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재치있게 표현해 금방 유행어가 됐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처럼 제약사들이 약 광고에 사활을 걸다시피한 것은 광고가 곧 판매상승과 직결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 광고가 범람할수록 사회 문제도 발생했다.
따라서 정부는 71년부터 방송 윤리규정을 강화해 배타적 표현, 최상급 표현, 책임소재 불명, 완치, 무해 등의 표현, 적당치 않은 방법으로 입수된 증언, 외국 CM,외국의 상업문안 등을 규제했다. 그러나 제약사들은 더욱 현란한 기교를 동원 약광고에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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