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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과대 광고 범람 시대상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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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2 08:34:22

“팔고 보자”식 허풍선전에 피해자 속출
유한, 기업정신 강조 영문광고 돋보여


해방 전의 약 광고가 다 허위 과대 과장 광고였던 것은 아니다. 다음 몇 가지 사례를 보면 그래도 비교적 정직한 광고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0~40년대 유행했던 광고 중의 하나였던 백보환,도약방임질약,그리고 유한양행의 광고를 서로 비교해 보면 이같은 사실이 확연히 구분된다.
광고가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당시 우리 시대상이 어떠했는지도 역설적으로 음미해 볼 수도 있다.
‘참 세상은 좋은 세상이구려, 100인이면 100인이 모두 대망하고 있던 독특한 비약 출현!10년 이상된 임질과 부인병(적백 대하증,냉증) 불과 4,5일 전후 내복으로 남녀 뿌리를 빼는 세계적 독특 비약 출현.(1941년 103 매일신보)
이 광고는 도약방의 임질약 광고로 광고를 하는 자신들도 ‘허풍광고’ 였다는 것을 인정하기라도 하듯 ‘백만의 선전보다 복용자 전부가 증명하고 있다’고 광고의 맨 상단부에 눈에 띄게 명시해 일단 한 번 복용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팔고 보자는 식의 참으로 무책임한 광고가 아닐 수 없다.
또다른 광고를 보면 실소가 절로 나온다. ‘천고비방 백보환,부인백보환’ 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당시 화제 만발이었던 백보환 광고는 여름은 의학상으로 ‘ 구미(口味)가 줄고 체중(體重)이 줄고 양기(陽氣)가 줄고 피가 마르고 백가지가 다 주는 시절(時節)입니다’고 그럴 듯 하게 시작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여섯 가지로 설명했다.
1.백보환을 쓰시면 양기와 식기가 배가되고 기혈(氣血)이 왕성해 무슨 일이든 2인분을 하게 됩니다. 2.체증과 속병은 어느 새 없어 졌는지 알지도 못하고 없어지고 위장이 튼튼해 지고 3. 체중이 증가되고 혈색이 좋아지며 5년 내지 10년 쯤 갱(更)소년이 됩니다. 4.정력이 강대하여 지므로 양기부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제증이 자연히 근치됩니다. 5.폐와 심장이 건전하여 져서 기침병 폐병 숨찬증 같은 것에는 절대로 걸리지 않습니다. 6. 노인이 쓰면 해소가 없어지고 잠이 잘 오고 소변이 잘 통하고 원거리 도보에도 숨차지 않고 다리도 아프지 않고 기진하지 않습니다. 맨 마지막에는 백보환(百補丸) 쓰면 避暑(피서) 보다 效力倍勝(효력배승)이라고 매듭 짓고 있다.( 1941.7.24 매일신보)


복용자 전부가 ‘증명’


참으로 허풍이 세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지금 같으면 과대광고에 걸려 제재를 받아도 한참을 받을 만한 내용으로 가득찼다. 당시의 거의 모든 약 광고들이 이랬다. 이런 가운데 유한양행의 광고는 그래도 건실한 광고 였다는 것이 그 내용으로 입증되고 있다.
당시 유한의 간판품목이었던 강장제 ‘네오톤’은 추위는 다 지나 갔으나 이때에 호흡기병이 유행 한다’고 경각심을 주고 있다.
‘겨울 동안에는 누구나 다 추위에 부대껴 대개 실내에서만 있으므로 일광도 충분히 쏘이지 못하고 운동도 부족하여 병약자는 물론 건강한 사람이라도 알지 못하는 동안에 몸이 약해져서 혹독한 추위가 지나간 요사이에 도리어 유행성 질환 폐렴 기관지 병에 걸리게 됩니다.’고 주의를 환기 시키고  카피의 마지막 부분에는 ‘본제의 작용에 관하여는 의사제현께 문의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있다. 우측 소박스 부분은 남성 강력제, 정력의 근원이라고 제목을 뽑고 이러한 분은 누구나 한 번 써보라고 권하고 있다.(36.1.12 조선일보)


신문사마다 단가 틀려


재미 있는 또 하나의 광고. 당시 국문 광고는 돈이나 사업 기업정신에 관한 내용은 싣지 않았다. 약의 효과에 대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유한양행은 이런 상식을 뛰어 넘었다.
37년 4월 25일 자 Seoul Press(서울 프레스)에 게재된 영문 광고를 살펴보자. 이 광고는 Valuable Service(값진 서비스)라는 큰 제목을 달고 나왔다. 우리 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저희가 이익을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재정적으로 성공해야 저희의 효용가치를 계속해서 높여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와 같은 사업은 감상이나 개인의 기분 또는 사적인 호소만으로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사업을 이루고 정당한 제품이나 서비스 가치를 제공해야 됩니다. 사업 성공의 척도는 그 효용 가치에 달려 있습니다. 저희는 경제적인 향상과 공중 보건의 증진을 위해 일함으로써 사업 목표를 달성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광고는 창업자 유일한이 직접 쓴 것으로 돼 있다. 유일한의 기업정신이 잘 함축돼 있다. 오늘날에도 유한은 유일한의 이런 기업자 정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한편 36년 유한양행에 입사해 40년 감사를 거쳐 해방후에는 경무대에서 이승만의 공보비서로 활약했던 광고인 강한인의 흥미있는 증언이 있어 소개한다. 대담 내용은 한국광고사(신입섭·서범석 . 나남 1988)에서 발췌했다.
문. 신문사와의 거래 관계는 어땠나요. 그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 그리고 일본어의 경성일보 등이 있었을 텐데요.
답. 인쇄도안이나 프린트는 문제가 없고 단지 한 라인(행)에 대해 얼마냐를 교섭하죠. 나는 깍는 것이 목적이라 1리(厘,0.1전)를 가지고 상당히 다투었어요.
문. 신문사별로 가격을 따로 따로 했습니까.
답. 동아일보 보다 매일신보는 싸고 그리고 경성일보와 일본어 신문이 다 다르고 그래서 경성일보 일본인 광고부장까지 만나 교섭했죠.
문. 당시 광고하던 사람끼리의 모임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답. 그 당시 한국기업으로 광고하는 곳은 셋 뿐이었지요. 경성방직, 화신, 유한 그리고 금강제약이라고.
문. 유한이 제일 전문적으로 했겠네요.
답. 유한은 약이니까. 약은 광고를 안 하면 안되니까. 약 20%. 판매고의 20%를 광고에 썼습니다.
문. 신문 잡지외에도 전선주 광고니 야립 간판이니.
답. 광고수단이란 것은 모두 동원 시켰죠. 단지 길가에서 깃대 세우는 것만 안했지. 포스터 전차 또 전차에 많이 했습니다. 그 당시 전차가 있었으니까요. 약방에 붙이는 삐라 또 메일. 디렉트 메일을 제일 많이 썼어요. 왜냐 가격이 제일 싸니까. 그것을 우체부가 가져다 준단 말이야. 공안과라고 당시 공병우 시력표가 있었어요. 그걸 수천매 만들어 대만까지 보냈습니다. 그래서 공안과가 유명해 졌죠.


광고비는 아끼지않아


문. 시력 테스트 하는 그림을 그려서 그밑에다 유한의 광고를 넣었다는 말이죠.
답. 예, 네오톤 광고. 약이라는 것은 함부로 붙이면 품위가 떨어진다고 해서 주로 약방같은 데에 붙였고 전주광고는 안했습니다. 음악포스터 광고는 했지요. 연간 광고비는 약 50만원 정도로 40년대 피크에 올랐죠.
‘유한 50년사’에 보면  동아 조선 매일 경성일보는 물론 만주 중국 일본 등지의 일간지 까지 합쳐 20개지에 월 5만원 이상의 광고비를 투입했다. (유한은 당시 20개 일간지에 월 평균 1개지 당 전 5단 광고를 10회 가량내고 있었다고 적고 있어 많은 광고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문. 40년도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없어 졌는데 그 뒤에는 어떻게 했나요.
답. 일본어 신문에 광고 했지요. 유한이 다른 점은 광고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광고가 비싸든 싸든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창설자인 유일한 선생님 정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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