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안전의 상징 ‘해썹’을 되돌아 봐야 한다

[보건포럼] 이철수 한국식품과학연구원연구기획사업단/HACCP컨설팅팀장

HACCP제도는 정부가 주관하는 식품안전인증제도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제도다.

제조업의 안전관리는 일반적으로 제조가 끝난 완제품만을 점검해 안전성 여부를 결정하지만 HACCP은 식품의 생산·가공·유통·판매 등 식품과 관련된 단계별 주요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해요소를 점검해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는 제도다. 결론적으로 해썹(HACCP)이란 식품의 원재료부터 제조, 가공, 보존, 유통, 조리단계를 거쳐 최종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의 각 단계에서 발생할 우려가 있는 위해요소를 규명하고, 이를 중점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중요관리점을 결정해 자율적이며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로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학적인 위생관리체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해썹인증을 받은 업체는 식품업체와 농가들을 포함해 1만 여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듯 양적인 팽창이 기하급수적으로 진행되면서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식품 및 축산물의 의무화 대상품목이 늘면서 업체들은 자발적인 의사보다는 강압에 의해 HACCP을 도입하게 된다. 영세한 업체의 경우 자율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부분은 대부분 민간 컨설팅 업체에 서류 준비 등을 위탁한다. 그러다보니 해썹 기준이 무엇인지, 점검 시엔 뭐가 필요한 지 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모의고사를 치르듯 예제풀이와 짜 놓은 각본대로 예행 연습해 HACCP을 인증 받는다. 해썹 인증 마크만 매달려 있을 뿐 인증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나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곳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HACCP을 인증 받은 후에는 일이 바쁘다 보면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고 무엇을, 왜 지켜야 하는지 이해해야 하는데 잘 모르고 요건만 맞추다보니 문제가 생기기 쉽다.

최근 살충제 계란 파문 등으로 먹거리 안전에 대한 국민의 걱정과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제 해썹 업체 제품은 국민이 믿고 구매한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이 생산한 제품에서 이물질이 검출되고 위생취급 기준을 위반하는 등 식품위생법을 어긴 업체들도 HACCP마크를 버젓이 표시한다. 해썹의 원래 목표를 지키려면 신규 진입 장벽을 크게 높이고 기존에 인증 받은 업체도 재점검해서 취소할 곳은 취소해야 한다.

HACCP의 문제점은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현행 HACCP 평가는 주로 위생시설과 설비, 그리고 법률적인 부분을 위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여부를 가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시설과 법률적인 부분 위주의 평가제도로 인해 생산현장과 관리 당국 모두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문제가 생겼을 때 시스템의 문제인지 현장의 문제인지 알 수 없다. 독점적인 심사권한은 경쟁자나 견제장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불합리한 평가에도 업체들은 불이익을 두려워해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 그만큼 심사권한과 역할은 중요하며 엄격해야 한다. 현장 평가를 나가는 심사관들이 현장과 해썹을 완벽히 이해해야만 문제점도 찾아낼 수 있다. 이를 위해 민간 전문가들이 심사과정을 참관하는 옴브즈맨 심사제등과 같은 평가공개 및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현행 HACCP제도 자체는 체계적으로 잘 구성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이러한 식품안전시스템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식품안전대책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이 정부가 아닌 생산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정부가 기준을 제시하면 생산자가 이에 맞추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어 제도의 취지가 약화되고 있다. 인증서가 없으면 납품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해썹 인증을 받는다. 인증서를 받지 않더라도 업체가 식품위생관리법 등 기본법만 준수할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안전한 식품을 만들 수 있다. 즉 업체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지 인증여부가 안전여부를 100%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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