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 공자는 미식가였다

허정 교수의 보건학 60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전 보건대학원장)

많은 사람들이 교양서로 꼽는 논어는 총 20편이다. 대부분 10편까지는 외우다시피 공부한다. 그러나 공자의 사생활을 알려면 향당편(鄕黨編)을 봐야 한다.

공자는 옷을 입는데 격식을 중요시했다. 향당편에는 겨울철 공자가 입었던 털옷 얘기가 많이 나온다. 솜옷이 없었던 당시 겨울이면 여우나 담비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고 한다.

공자가 주로 살았던 산동지방은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지역이다. 음식을 두고 먹다 보면 부패할 수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실제 공자가 살았다는 곡부(曲阜)에 가 보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경동시장에서 파는 밤이나 대추의 꽤 많은 양이 산동성에서 키워진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부터 한약에는 감초와 대추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탕약을 집에서 끓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집에서 탕약을 끓였다. 잘 끓여진 탕약 속에서 대추를 골라먹던 기억이 난다.

요새도 유명인들은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 것 같다. 특히 중국에서 외국손님을 대접할 때는 이런 습관이 남아 있다. 닉슨이 미중수교 후 중국요리를 젓가락을 사용해 먹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서양 사람들에게 젓가락은 매우 희귀했으며 우리나라가 쓰는 쇠젓가락은 더욱 그랬다.

이제 공자는 문성대왕(大成至聖文宣王)으로 추앙받고 세계적으로도 존경받고 있다. 그와 함께 중국 음식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나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중학교 초까지 일본식 교육을 받았고 나이 먹어서는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살았다. 그러나 세계사적인 입장에서 사람들을 고루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서양의 문학을 이해해야겠다는 느낌이 갈수록 많아진다.

내가 젊었을 때 중국의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임어당(林語堂)이 동서양 문명의 상호 협조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기억이 난다. 당시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로마 중심의 서양문명을 얘기하고 그 중요성을 말하던 것도 기억난다.

그러나 한국인이며 동양 사람으로 자라나 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입장에서 다시 한번 공자를 생각한다. 내가 좋아했던 양주동 박사는 나이 먹을수록 논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곁들여 공자의 식생활도 얘기한 바 있다.

논어의 향당편을 보면 공자는 미식가로 나온다. 고운 쌀로 만든 밥과 가늘게 썬 회를 즐기고 색이 나쁘거나 냄새가 나거나 제철음식이 아니거나 알맞게 익히지 않거나 올바르게 자르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음식 얘기를 하다 보니 인(仁)의 부재와 예악(禮樂)의 상실에서 세상이 혼란한 연유를 찾았던 공자의 인자(仁者愛人) 얘기가 새로워진다.
 


보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