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에서 대표적인 표적단백질로 꼽히는 GPC3(Glypican-3)가 과도하게 증가하는 원리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연구진은 유전자 자체의 변화가 아닌, 유전정보가 RNA로 만들어진 뒤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GPC3의 발현이 조절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남석우 교수 연구팀은 간암세포에서 GPC3를 만드는 RNA의 끝부분인 3′ 비번역부위(3′UTR)가 짧아지면서 GPC3의 발현을 억제하던 장치가 사라진다는 새로운 기전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GPC3는 정상 성인의 간에서는 거의 발현되지 않지만 간세포암에서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는 단백질이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간암의 진단 및 예후 평가에 활용되고 있으며, GPC3를 표적으로 하는 항체치료제와 CAR-T 세포치료제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간암세포에서 GPC3가 왜 이처럼 증가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명확한 설명이 부족했다.
연구팀은 간질환 환자 코호트와 TCGA, ICGC 등 대규모 유전체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GPC3 발현 조절 과정을 추적했다.
그 결과 간암 조직에서는 GPC3 RNA의 3′UTR이 선택적 폴리아데닐화(Alternative Polyadenylation·APA)에 의해 정상보다 짧아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RNA의 3′UTR이 짧아지는 정도가 클수록 GPC3 발현량도 높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APA는 하나의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진 RNA의 끝부분을 서로 다른 위치에서 절단하고 연결해 RNA의 길이를 조절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 따라 RNA에 포함되는 조절 부위가 달라지면서 최종적으로 단백질 생성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GPC3 RNA 단축을 유도하는 핵심 조절인자로 CSTF2(Cleavage Stimulation Factor 2)를 확인했다.
실험 결과 CSTF2를 억제하면 GPC3 RNA의 3′UTR이 다시 길어졌고, 반대로 CSTF2를 증가시키면 RNA의 끝부분이 짧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RNA 길이 변화가 실제 GPC3 증가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과정도 확인했다. 정상 간에서는 GPC3의 긴 3′UTR에 miR-96-5p와 miR-140-5p라는 두 종류의 마이크로RNA(miRNA)가 결합해 GPC3가 과도하게 만들어지지 않도록 억제한다.
그러나 간암에서는 CSTF2가 증가하면서 GPC3 RNA의 3′UTR이 짧아진다. 이 과정에서 두 miRNA가 결합할 수 있는 부위까지 함께 사라지면서 GPC3에 대한 억제 기능이 약해진다.
결국 GPC3 단백질이 과도하게 만들어지고, 이는 간암세포의 증식을 촉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를 'CSTF2 증가 → APA에 의한 GPC3 RNA 단축 → miRNA 억제 회피 → GPC3 증가 → 암세포 증식'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조절 축으로 제시했다.
이번 연구는 간암에서 GPC3의 발현이 단순히 유전자 전사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RNA가 만들어진 이후의 후전사 조절 과정에서도 중요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발견은 향후 간암 치료 전략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현재 GPC3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법은 주로 암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GPC3 단백질을 직접 공격하는 방식이다. 반면 이번 연구는 GPC3가 과도하게 만들어지는 상위 단계에서 CSTF2 또는 APA 조절 과정 자체를 겨냥하는 치료 전략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CSTF2와 GPC3의 발현 및 RNA 조절 상태를 분석해 간암의 특성을 파악하는 바이오마커 개발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남석우 교수는 "이번 연구는 RNA 후전사 조절기전인 APA가 간암에서 GPC3 발현을 조절하는 핵심 메커니즘임을 규명한 연구"라며 "향후 간암의 정밀의료와 차세대 표적치료 개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Oncogene'에 게재됐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남석우 교수가 교신저자로, 대학원 박사과정 전소영 학생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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