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삶에 다리를 놓다"… 서울재활병원이 만드는 '전인적 재활'
인터뷰/ 이지선 서울재활병원장
환자 한 사람 넘어 가족·학교·지역사회까지 연결…"재활의 완성은 삶의 참여"
재활심리·가족지원 등 "병원은 치료 종착지가 아닌 삶으로 건너가는 브릿지"
"나에게 병원이란 '브릿지(다리)'입니다."
이지선 서울재활병원장이 말하는 병원의 역할은 단순히 질환이나 장애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에 머물지 않는다. 환자가 병원을 나와 가정으로, 학교로, 일터로,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끊어진 삶의 연결고리를 다시 잇는 것. 이것이 이지선 병원장이 생각하는 재활의 본질이다.
서울재활병원은 1998년 개원 이후 소아·청소년 재활을 중심으로 재활의료의 영역을 넓혀왔다. 국내 최초 소아재활 낮병동을 시작으로 청소년 통합관리, 학교재활, 가족지원, 지역사회 연계 등을 이어오며 '환자 중심'을 넘어 '삶 중심' 재활을 구현해 왔다.
특히 이 병원장은 재활의 범위를 환자 개인에게만 한정하지 않는다. 환자를 둘러싼 가족과 학교, 지역사회까지 함께 바라봐야 진정한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때문에 이 병원장은 '전인적 재활'의 출발점은 가족이라고 강조한다.
서울재활병원은 1998년 개원 당시부터 소아재활을 시행하면서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과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에 주목해왔다. 소아재활은 짧은 기간의 치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발달에 따라 오랜 기간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장애나 질환을 진단받은 직후 부모가 겪는 심리적 충격과 불안, 경제적 부담은 치료의 지속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지선 병원장은 "소아재활을 하는 전문의로서 느끼는 것은 아이가 진단을 받은 이후 첫 3년 동안 부모님들이 거의 병원에 살다시피 한다는 것"이라며 "그 시기에 전문가가 건네는 말 한마디가 부모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재활병원은 환자뿐 아니라 가족을 재활의 중요한 치료 단위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서울재활병원은 2019년 국내 재활병원 가운데 처음으로 병원 내 가족지원센터를 마련했다. 이후 4089가족을 대상으로 3만건이 넘는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만족도는 97.2%에 달했다. 러시아어로 진행되는 '돌봄제공자를 위한 ACT' 프로그램을 국내에 처음 도입하고 국제 워크숍으로 확대하는 등 가족의 심리적 회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이 병원장은 가족지원이 단순한 복지 서비스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루 중 환자가 치료받는 시간은 제한적이고, 치료가 끝난 뒤 대부분의 시간은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또 병원에서 배운 기능과 행동을 일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가족이 담당할 수밖에 없어서다.
결국 가족의 이해와 참여가 치료의 지속성을 높이고, 재활의 성과를 삶 속으로 가져가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하루의 치료보다 긴 '나머지 삶'까지 바라보다
재활의 목표를 치료실 안에서 찾으면 치료의 성과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 병원장은 "환자가 병원에 있는 시간보다 병원 밖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훨씬 길다"는 점을 강조한다.
병원에서 걷는 연습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교에 가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친구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직업을 갖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울재활병원이 바라보는 재활의 핵심은 '기능 회복'에서 '사회 참여'로의 확장이다.
이 병원장은 "재활의 진정한 치료 단위는 환자 한 사람이 아니라 환자를 둘러싼 가족 전체"라며 "가족이 치료의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결국 환자의 재활을 지속시키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재활병원이 '삶 중심 재활'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학교와 지역사회다. 이에 2016년부터 학교재활을 시작했다. 의료진과 간호사, 치료사가 특수학교를 직접 찾아가 학생들의 건강관리와 재활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 학교와 연계해 이뤄진 건강관리만 누적 1만9226건에 달한다. 병원 안에서 치료를 받는 아이가 학교에서는 '학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지역사회와의 연결도 확대했다. 현재 서울재활병원은 복지관,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 보조기기센터, 재활체육기관, 가족지원기관 등 8개 영역, 61개 기관과 연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의료·교육·복지는 각각 다른 법과 예산 체계로 움직이고 있어 환자 한 사람의 삶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연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병원장은 "환자는 병원에서는 환자이고, 학교에서는 학생이며, 지역사회에서는 주민"이라며 "하지만 이 세 공간을 하나의 삶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재활병원은 디지털 플랫폼 '재활이음'을 통해 병원과 학교,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환자가 기관을 옮길 때마다 자신의 병력과 치료 이력을 반복해서 설명하거나 동일한 평가를 되풀이하는 불편을 줄이고,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보다 유기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것이다.
이지선 병원장은 재활의 목표를 "재활의 완성은 병원 안에서 완벽한 동작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교실과 가정, 일터에서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소아에서 청소년, 성인까지…끊기는 순간마다 다리를 놓는다
소아·청소년 재활에서 또 하나의 큰 과제는 '전환'이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치료의 목표는 달라지지만 의료체계와 서비스가 그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면 재활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서울재활병원은 일찍부터 이 문제에 주목했다. 2002년 국내 최초로 소아재활 낮병동을 시작했고, 2006년에는 장애청소년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2013년에는 방과 후 청소년 낮병동을 열었다.
이 같은 시도는 단순히 치료 시간을 늘리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성장 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환자의 필요를 의료와 교육, 사회적 관점에서 함께 바라보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이 병원장은 재활을 생애주기에 따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유아기에는 조기 집중치료와 발달 촉진이 중요하고, 학령기에는 학교생활과 또래관계 등 참여가 핵심이 된다. 청소년기가 되면 척추측만이나 관절 구축 등 신체적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 독립과 자립을 준비해야 한다. 성인기로 넘어가면 직업재활과 운전재활, 독립생활 훈련, 지역사회 참여 등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
서울재활병원이 추진하는 'Transition Care'도 이 같은 생애주기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병원장은 "아이의 나이가 바뀐다고 해서 그동안의 치료와 삶의 맥락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환자가 어느 단계에 있든 이전의 치료 경험과 다음 단계의 목표가 이어지는 것이 진정한 생애주기 재활"이라고 말했다.
새 병원이 의미하는 것…'건물'이 아닌 새로운 재활 플랫폼
서울재활병원이 그리는 미래는 단순한 시설 확장이 아니다. 지역사회 안에서 소아부터 성인까지 이어지는 생애주기 재활을 완성하고, 입원과 외래, 가정의 치료 데이터를 연결하며, 로봇과 AI 등 미래 기술을 활용한 재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임상 의료진과 치료사, 연구자, 엔지니어, 기업 등이 함께 참여하는 'Living Lab' 모델도 구상하고 있다.
이 병원장은 의료기관만의 노력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완성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 기업의 기술 투자, 시민사회의 사회적 관심이 함께 맞물려야 지속가능한 재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재활병원이 수도권 공공어린이재활병원으로 2021년 지정된 데 이어 2026년 2차 지정까지 이어진 것은 공공재활의 역할을 더욱 확대할 수 있는 기반으로 평가된다.
서울재활병원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적지 않다. 국내 최초 소아재활 낮병동을 시작했고, 장애청소년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재활병원 가운데 처음으로 가족지원센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지선 병원장이 진정으로 남기고 싶은 것은 '최초'라는 기록 그 자체가 아니다. 그는 "우리가 남기고 싶은 것은 The First를 시작한 사람들이 아니라, 변화가 계속되는 병원"이라며 "그것이 지속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조직을 하나의 생명체, 직원들을 함께 성장하는 나무로 바라보고 조직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을 찾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결국 지속가능한 병원은 한 사람의 리더십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조직문화에서 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병원장이 인터뷰의 마지막에 다시 한번 강조한 병원의 존재 이유도 결국 '브릿지'로 귀결된다.병원은 환자가 머무는 종착지가 아니라, 멈춰 섰던 삶을 다시 시작해 세상과 일상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통로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재활병원이 만드는 전인적 재활은 결국 치료의 범위를 넓히는 일이 아니다. 환자의 몸에서 가족으로, 병원에서 학교와 지역사회로, 소아에서 성인으로 이어지는 '삶의 연결'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연결이 끊기는 곳마다 다시 다리를 놓는 것. 이지선 병원장이 말하는 서울재활병원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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