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의약품 접근성 제고와 편의를 위해 도입된 안전상비의약품 제도가 정작 현장에서는 심각한 관리 부실과 법 규정 위반 속에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약사회와 미래소비자행동이 전국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업소 1050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정 판매 준수사항을 완벽히 이행하고 있는 업소는 전체의 2.8%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의 97.2%가 1개 이상의 관리 의무를 위반했으며, 82.4%는 2~4개 항목을 동시 위반하는 등 관리 체계 전반의 허점이 확인됐다.
주요 위반 유형으로는 판매자 등록증 미게시(68.8%), 동일 품목 1회 2개 이상 판매(55.1%), 사용상 주의사항 미게시(50.1%) 등이 잇따라 적발됐다. 특히 등록 기준인 '24시간 연중무휴 운영'을 위반해 야간에 문을 닫는 업소가 5.2%(비주요 브랜드 편의점의 경우 23.3%)에 달했고, 평균 구비 품목도 8.2개에 머물러 전 품목(11개)을 갖춘 곳은 12.8%에 불과했다. 이 밖에도 교육을 받지 않은 교대 근무자의 판매, 식품·숙취해소제와 의약품의 혼합 진열 등 복약 안전을 위협하는 사례가 다수 포착됐다.
대한약사회는 현행 판매 지침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와 산업계가 추진하는 품목 확대나 규제 완화는 본말이 전말된 조치라고 지적했다. 약사회는 무분별한 외연 확장에 앞서 판매업소 전수점검, 24시간 운영 기준 준수 점검, 실체적 판매자 중심의 교육 개편, 의약품 전용 진열기준 확립 등 관리·감독 체계의 정상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대한약사회는 사설 플랫폼 업계가 주도하는 '비대면 진료에 따른 약배송 전면 확대' 요구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약사회 측은 해외 사례 분석을 바탕으로 약배송 허용 국가는 오배송으로 인한 사망사고, 배송 누락·지연, 품질 변질, 개인정보 유출 등 중대한 부작용을 겪고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약국 수가 48.4곳으로 미국(16.1곳), 독일(20.4곳) 등 주요국 대비 압도적인 의약품 대면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검증되지 않은 무제한 배송 도입보다는 섬·벽지나 중증 장애인 등 법정 재택수령 대상자에 한해 안전장치를 갖춘 제한적 시행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현행 안전상비약 판매처의 파행 운영을 방치한 채 품목을 확대하거나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국민 안전을 외면하는 격"이라며, "비대면 약배송 역시 사설 플랫폼의 이익 논리가 아닌, 공적 전자처방전 전달시스템 구축과 공공심야약국 확충 등 보건의료 전문가 중심의 안전망 조성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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