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수술 의사 사라진다"…신경외과 필수의료 '경고등'
신경외과학회 추계학술대회서 인력·수가·법적 보호 정책 제안…한·중·일 첫 공동 심포지엄도
중증 뇌수술 보상 강화·준폐쇄형 중환자실 도입 촉구…소아 중증응급 책임전원 시범사업 추진
"뇌수술 전문의 한 명을 키우는 데는 15년이 걸리지만, 현장에서 잃는 데는 5년이면 충분합니다."
고난도 수술을 감당할 인력은 줄고, 남은 의료진에게는 24시간 대기와 형사처벌 위험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신경외과 필수의료의 위기가 더는 개별 의료진의 희생만으로 버틸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경고가 나왔다.
대한신경외과학회(이사장 김긍년)는 16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열린 제66차 추계학술대회(KNS 2026)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증·응급 뇌·척수 질환의 최종치료 역량을 유지하기 위한 '신경외과 8대 핵심 정책제안'을 발표했다. 수가 현실화와 전문인력 양성, 중환자 진료체계 개선,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까지 아우르는 구조적 대책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번 간담회는 학회가 필수의료 현장의 위기를 직접 알리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한 첫 공식 기자간담회다. 2022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사건 이후에도 중증 뇌혈관 질환을 제때 치료할 수 있는 의료체계가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배경이 됐다.
김긍년 이사장은 "2022년 사건 이후 4년이 흘렀지만, 뇌혈관을 비롯한 신경외과 필수의료 환경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이제는 학회가 체계적인 정책 대안을 국민에게 알리고 제도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KNS 2026에는 국내외 신경외과 의료진 14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한국·중국·일본 신경외과학회가 처음으로 'Bridging Minds'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3국 순환 개최 체계를 마련했다. 국제 학술 교류가 확대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고난도 뇌수술을 담당할 인력과 진료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뇌혈관 수술 전문의 133명…인력 고령화에 지역 격차까지
김주한 미래기획위원장은 지난 9월 21일 국회 소병훈 의원실과 진행한 정책간담회 논의를 토대로 8대 핵심 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신승훈 뇌혈관 분야 교수, 신준재 척추 분야 교수, 김재용 뇌종양 분야 교수, 조광호 신경중환자 분야 교수, 은중규 소아청소년 분야 교수, 박관규 노인 분야 교수 등 세부 분과 관계자들도 참석해 현장의 문제를 공유했다.
학회에 따르면 전국에서 뇌혈관 수술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의사는 133명에 불과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척추 진료와 외래 업무를 병행하고 있어 야간이나 휴일에 발생하는 응급 개두술에 즉각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난치성 뇌전증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전국 9명뿐이다. 전국 86개 수련병원의 뇌종양 전임의 1년 차 지원자는 2018년 9명에서 최근 3명으로 줄었다. 현재 활동 중인 뇌종양 전담의 101명 가운데 68%가 수도권에 집중돼 지역별 치료 역량의 격차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고령화는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개두술을 수행할 수 있는 의료진 상당수가 정년을 앞둔 상황에서 젊은 전문의 유입마저 줄어들면 고난도 뇌수술의 명맥이 끊길 수 있다는 게 학회의 우려다.
김 위원장은 젊은 의사들이 고난도 뇌수술을 기피하는 핵심 원인으로 경제적 보상뿐 아니라 사법 리스크를 지목했다. 수련 과정에서 뇌수술에 뜻을 두더라도 환자의 예기치 못한 악결과에 따른 형사처벌 가능성을 우려해 척추 진료나 개원 등 다른 진로를 선택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0%가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구속되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기피 이유로 꼽았다"며 "불가피한 사망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수술에서 집도의가 형사 기소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누가 선뜻 메스를 잡겠느냐"고 반문했다.
수가·인력·교육·법적 보호…8대 정책으로 구조 개혁 요구
학회가 제시한 8대 핵심 정책은 중증·응급 신경외과 진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의료체계 전반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다. 보상체계와 인력 양성, 당직 운영, 중환자 진료, 법적 책임을 각각의 문제가 아닌 하나의 연결된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현행 행위별 수가제의 한계를 개선하고 중증 수술의 난이도와 소요 시간, 투입 인력을 반영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짧은 수술을 여러 건 하는 편이 장시간 고난도 수술 한 건보다 병원 경영에 유리한 구조에서는 필수의료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응급환자를 언제든 수용할 수 있도록 의료진의 대기와 병원의 준비 비용을 보전하는 공공정책수가 도입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단순히 수술 행위에 대한 보상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24시간 최종치료 역량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인력 양성 대책도 요구했다. 전문의 취득 이후에도 4~5년 이상의 세부 수련이 필요한 고난도 뇌수술 분야의 특성을 고려해 전임의에게 수당만 지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해외연수와 연구비, 상주 인센티브 등을 포함한 국가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환자 진료체계 개선을 위해서는 '준폐쇄형 중환자실(Semi-Closed ICU)' 모델 도입을 제안했다. 장시간 수술을 마친 집도의가 중환자실 환자의 전신 관리와 야간 상태 확인까지 도맡는 구조에서는 의료진의 소진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집도의는 수술과 신경학적 판단에 집중하고, 상주 전담의가 환자의 전신 상태를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해 역할을 분담하자는 취지다. 이를 뒷받침할 전담 수가 신설도 요구했다.
이와 함께 고난도 척추 재수술과 척추수술의 중증도를 반영한 수가 신설, 권역별 30분 이내 대응을 목표로 한 온콜(On-call) 대기당직 수가 도입도 제안했다. 수술로 호전될 수 있는 치매 환자가 적기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치매안심센터와 주치의 사업에 신경외과 참여를 확대하고, 의료기관 종별 역할 분담을 위해 신경외과 병원협의회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회는 무엇보다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망 구축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최선의 진료를 했음에도 불가피하게 악결과가 발생한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면책을 법제화하고 국가 책임 배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보상과 인력, 교육, 당직, 법적 책임은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며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의료진 개인의 희생에 의존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소아 중증응급 책임전원망 추진…경기남부·인천부터 시범 운영
학회는 소아 중증·응급 환자가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아 여러 응급실을 전전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전원 시범사업도 추진한다. 대한소아청소년신경외과학회와 함께 마련한 '소아 중증·응급 신경외과 책임전원 네트워크 시범사업'이다.
소아 뇌질환은 발생 빈도는 낮지만 수술 난도가 높고, 이를 담당할 수 있는 전문의도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최초 대응 병원이 자체적으로 치료하기 어렵거나 적절한 수술 병원을 찾는 데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
시범사업은 2026년 11월부터 2027년 2월까지 경기남부 19개 시·군과 인천광역시를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고려대안산병원과 용인세브란스병원, 분당서울대병원이 핵심 거점으로 참여한다.
1차 대응병원이 수용하기 어려운 소아 뇌출혈이나 급성 수두증 환자가 발생하면 전문 코디네이터와 핫라인을 통해 수술이 가능한 거점병원으로 신속하게 전원하는 방식이다. 병원마다 수용 가능 여부를 개별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을 줄이고,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책임전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학회는 신경외과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지원이 아닌 제도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8대 정책의 목적은 특정 진료과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가장 위급한 순간에 24시간 365일 제때 뇌수술을 받을 수 있는 생명망을 지키는 것"이라며 정부와 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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