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여러 가지 동기와 목적 때문에 행해졌다.
때로는 참회와 기도를 위해, 때로는 질병치료를 위해, 혹은 정신단련을 위해, 어떤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슬픔 때문에, 정치투쟁의 한 방법으로 그 동기와 목적이 다양하다.
그중에서 투쟁을 위한 ‘단식'은, 단식을 행하는 사람이 "나는 지금 내 목숨을 걸고 나의 주장의 관철시키려 하고 있고, 이 의지를 세상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는, 비장한 각오에서 비롯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위정척사 운동과 의병 항쟁을 벌이던 이만도는 1910년 일본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자 단식을 시작한 사례가 있다.
일본 경찰이 와서 강제로 미음을 떠먹이려 하자, “누가 감히 나를 회유하고 협박하느냐!”라면서 호통을 쳤고, 1910년 10월 10일(음 9월 8일) 단식 24일 만에 순국했던 이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공감과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공감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람이 죽고 사는' 정도의 절박한 문제가 아닐 때에는 상황이 틀려진다. 과연 이만한 문제에 이같은 투쟁의 방식이 적절한 것인가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단식투쟁은 나라를 빼앗겨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폭압에 목숨으로 항거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부당한 행위를 했다는 쪽이나 부당함을 받았다는 쪽이나 과연 목숨과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절대적 가치를 생각해 보면 양쪽 모두 자유롭지 않다.
이같은 기준으로 볼 때 추무진 의사협회장의 단식투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필건 한의사협회장이 또다시 단식의 카드를 꺼내든 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어떠할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의사들이나 한의사들은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는 최고의 엘리트로 통하고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최고의 엘리트집단의 수장들이 맞붙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겨우 ‘단식’이라는 것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보건복지위 한 의원의 말처럼 “국민들이 보고 있는데 그 만한 위치에 있는 분들이라면 최소한 대화를 통한 합리적인 방법을 찾고 또 지도적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에 공감이 간다.
‘국민의 안전을 단두대에 올려놓을 수 없다’, ‘국민들이 판단할일.. 직능이기주의 버려야’ 이 말들은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의 주장으로 모두 국민들을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들의 주장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원칙과 기준을 바탕으로 대 국민홍보의 노력 없이 당사자들의 맞대결로 이어진다면 과연 이들 단체장들의 단식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Copyright @보건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