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의료분쟁이 증가하면서 환자가 진료 상담을 일방적으로 녹음하거나 근로자가 직장내 괴롭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녹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환자나 근로자는 분쟁 발생 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녹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로자가 회사 직원이 근로계약 갱신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하면서 한 녹음을 노동위원회에 제출한 것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대화를 녹음함에 있어 명시적 반대 의사나 기망·협박이 없었다.
해당 녹음행위가 근로계약 기간 종료로 인한 법적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정당한 목적에서 이뤄져 개인의 극도로 내밀한 영역에 해당하지 않으며, 오직 공적 판단기관인 노동위원회나 법원에 제출하는 방식으로만 사용된 점을 종합하면 음성권 침해로 인한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음성권을 헌법적 인격권으로 인정하면서 동의없는 녹음의 불법성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대법원 2025. 10. 16. 선고 2025다204730 판결 참고).
2. 대법원 2025다204730 판결이 명시한 바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자기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녹음, 재생, 녹취, 복제, 방송, 배포 등이 되지 아니할 권리를 가지며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하여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인격권에 속하는 권리다.
음성권은 단순히 통신비밀 보호라는 기술적 차원을 넘어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적인 인격권의 영역에 속하며, 음성권의 침해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특히 의료기관의 진료 상담은 모든 대화 중에서도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영역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음성권 침해의 불법행위 성립 기준으로 다음을 제시했다. △상대방의 명시적인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기망 또는 협박하여 녹음하는 경우 △둘째 녹음행위 자체는 부당하지 않았더라도 녹음한 음성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방송, 배포하는 경우 △이로 인해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과 필요성, 상대방이 입게 되는 피해의 성질과 정도 등에 비춰 위법성이 인정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진료상담이 개인의 극도로 내밀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진료 상담 녹음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 환자가 의사의 동의를 사전에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녹음하는 행위는 이미 위법성의 위험을 내포한다. 더욱이 의사가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라면 불법행위의 성립이 명확하다.
의료기관이나 환자가 형사 처벌과 민사 손해배상이라는 이중의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길은 투명성과 절차의 준수에 있다. 첫째 명시적 반대 의사나 기망 없이 명확한 사전 동의 절차를 정착시켜야 한다. 둘째,의료분쟁 예방과 진료 기록 정확성 확보라는 명확한 목적만이 허용된다. 셋째 의료분쟁의 조정, 중재, 법원 제출 외 다른 목적의 배포는 절대 금지돼야 한다. 특히 SNS나 인터넷 공개는 형법 제307조의 명예훼손죄나 정보통신망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
3. 정보통신망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3조와 제16조에 따르면,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한 경우 그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경우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 의료인이 징역형의 집행유예 이상 판결을 받으면 의료면허 자격취소까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다.
4. 결국 위와 같이 대화자 중 일방이 상대방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한 경우 원칙적으로 형사처벌대상은 아니나, 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일정한 요건 하에 민사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환자나 의료기관이 법적 분쟁을 피하면서도 정당한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전 동의, 명확한 목적 제한, 안전한 보관, 엄격한 배포 제한이라는 네 가지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이는 의료기관이 환자와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응 방안이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정당한 목적을 명확히 하고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만이 형사 처벌과 민사 배상 청구를 동시에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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