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 중인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 개정안에 대해 "무지하고 무책임한 시도"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했다.
특히 일부에서 제안되는 '응급실 던지기(이송 병원 미확보 상태로 일단 이송·반입)' 방식은 "20년 전 위험한 관행으로의 퇴행"이라고 경고했다.
의사회는 14일 "과거에 응급실 뺑뺑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병원에 연락 없이 환자를 무조건 데려온 탓에 문제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라며 "이 방식은 데려온 환자만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치료받고 있는 환자들까지 위험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가장먼저 의사회는 응급환자 특성별 진료 체계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와 즉시 최종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응급의학과의사회는 "최종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병원에 억지로 환자를 떠넘기는 것은 의료 안전을 해치는 일이며, 가능한 병원으로 즉시 이송하는 것이 환자를 살리는 길"이라고 밝혔다.
또한 중증 소아·중증 외상·고위험 산모 등 현재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분야는 "결국 최종치료 인프라를 확충해야만 해결될 문제"라고 못박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실시간 응급의료 대응 시스템 구축'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지난 20년간 비슷한 시도가 10번 이상 반복됐지만 예외 없이 실패했고 수백억이 허비됐다"며 "현장의 변수를 반영하지 못하는 시스템으로는 현실을 반영할 수 없다. 또다시 실패할 정책을 반복하려면, 먼저 그동안 사업을 설계한 책임자를 문책하고 예산을 환수하라"고 주장했다.
응급실 수용성 확대를 위해서는 119 이송의 적절성, 환자 분류 정확도에 대한 신뢰 확보가 우선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의사회는 "현재 119 이송 건의 절반이 경증 환자로, 명백한 도덕적 해이가 존재한다"며 "응급처치의 질 향상과 환자 분류 기능 강화를 위해서는 119 유료화 논의와 더불어 이송 단계에서의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사회는 최근 정치권·소방 주도 논의 구조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표하며 "응급의학 전문의를 배제한 채 비전문가들이 응급의료 대책을 논의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라며 "이 정도 성의 없는 대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선 국민 앞에 '어떤 응급의료 체계를 만들 것인지' 비전부터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의사회는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 관련 긴급 설문 중간 결과도 공개했다.
14일 오전 10시 기준 응답자 809명(전체 회원 1207명 참여 중)의 결과를 보면 △권역센터·지역센터 2인 이상 전문의 의무 배치: 93% "불가능" △응급실 수용거부 금지 조항: 99% "반대" △수용곤란 고지 제도 현실성: 94% "불가능" △개정안 통과 시 응급실 근무 지속 여부: 84% "그만둔다" 등의 결과가 나왔다.
의사회는 "이 결과가 현장의 절박한 현실을 보여준다"며 "정부가 현장의 의견을 외면한 채 책임만 떠넘기는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응급의료 인력 이탈로 더 큰 의료 공백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응급의료는 병상 하나, 의사 한 명을 늘리는 방식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 현장 전문가와의 협의 없이 추진되는 정책은 결국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뿐"이라며 "정치권과 소방이 공개 토론에 나서야 한다. 실효성 없는 대책을 강행하기보다, 국민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응급의료 체계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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