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어린이병원 기능기반 재편 필요, 본사업화 촉구"

소아청소년병원협회, "미지정 68% 병원 이미 달빛 역할 수행… '제도 뒤따라야' 현장 지적"

(왼쪽) 최용재 회장, 이홍준 부회장

야간·휴일 소아 의료 공백을 막고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제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회장 최용재 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가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는 국내 소아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해 정부의 정책 구조 전환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소아청소년협회는 지난15일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2025년 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회원병원 5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아의료정책 내실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소아진료 지역협력체계 시범사업의 조속한 본사업화와 달빛어린이병원의 기능 중심 재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지금의 소아의료체계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 붕괴 시점에 와 있다"며 "소아전문 인력 공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기존 소아청소년병원이 맡아온 역할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으면 심각한 의료공백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운영시간 중심 평가의 구조적 한계 드러나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달빛어린이병원' 지정 기준의 현실 부적합성이었다. 협회가 달빛지정 여부와 관계없이 실제 수행 기능을 조사한 결과, 달빛 미지정 병원 25곳 중 17곳(68%)이 야간 진료, 검사를 포함한 입원·응급대응 등 달빛어린이병원에 요구되는 기능을 이미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의 '운영시간 중심' 평가체계가 실제 기능을 갖춘 병원을 제도 밖으로 내몰고 있다는 의미다. 단순히 문을 오래 여는 병원보다 중등도 이상의 소아환자를 다룰 수 있는 병원을 '제도권 외'로 분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용재 회장은 "달빛어린이병원이 실제 소아진료 역량을 갖춘 기관 대신 운영시간만 충족한 기관으로 채워지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수술, 입원, 응급대응 등 고난이도 기능을 수행하는 소아청소년병원들이 오히려 배제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설문에서 달빛어린이병원 기준을 운영시간이 아닌 기능·역량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은 71%에 달했다. 또한 "현재 운영시간 기준이 고난이도 진료기관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문항에도 48%가 '그렇다·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제도적 역차별 심각"… 고난이도 기능 갖춘 병원은 탈락

운영시간 기준의 부작용은 곳곳에서 현실적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야간 검사와 입원, 응급 대응이 모두 가능한 소아청소년병원이 운영시간 미충족으로 달빛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응답자의 77%가 '제도적 역차별'이라고 답했다.

최 회장은 "수도권의 한 소아청소년병원은 고난이도 소아진료를 꾸준히 수행해 왔음에도 운영시간 중심 평가로 달빛 지정에서 탈락했다"며 "결국 응급·입원 기능 축소로 이어져 지역 내 소아진료 체계가 크게 흔들렸다"고 사례를 설명했다.

반면 일부 2차 의료기관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상시 부재 상태에서 응급실 실적만으로 달빛 가산과 응급 수가를 받아 실질적으로 소아전문 진료를 하지 않으면서 보상은 받는 '역전 현상'이 확인됐다.

협회는 이를 "진료기능 없는 기관이 가산을 받고, 실제 소아진료를 담당하는 곳은 역차별받는 제도의 구조적 결함"으로 규정했다.

"1형·2형 달빛으로 구분해야"… 의원형–병원형 이원화 개편에 81% 찬성

협회는 이러한 왜곡을 해결하기 위해 달빛어린이병원 제도를 ▲1형 의원형(경증 외래·신속 전원 중심) ▲2형 병원형(검사·입원·응급대응 중심)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해당 방안에 대해 81%가 찬성(매우 동의 50%, 동의 31%)해 사실상 회원병원 다수가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형 병원형의 경우 상시 대기인력, 전문의 확보, 검사·입원 인프라 등 고난이도 기능을 감당하기 위한 standby cost(상시대기비용) 보전이 필수적임에도 현행 수가체계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89%에 달했다.

협회는 "이제는 단순히 몇 시까지 문을 여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에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며 기능 중심 재편이야말로 소아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네트워크 시범사업, 긍정적 평가에도 구조적 한계 명확

한편 소아진료 지역협력체계 네트워크 시범사업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응답자의 78%가 '중등도 이상 환자의 골든타임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답한 것.

다만 현실적 병목도 분명했다. 최근 1년간 전원 지연을 얼마나 경험했느냐는 질문에 ▲매우 자주 경험 19% ▲자주 경험 42% 으로 60% 이상이 상급병원으로의 전원을 상시적으로 지연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원 지연의 근본 원인으로는 ▲상급병원 수용능력 부족(75%) ▲회송·연계 수가 부재(67%) ▲전원·이송 컨트롤타워 부재(54%) ▲권역별 표준 매뉴얼 미확립(48%) 등이 꼽혔다.

이홍준 부회장은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상급병원의 수용능력 확대가 전제돼야 한다"며 "전원·이송 체계를 관리하는 지역 단위 컨트롤타워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장비와 인력을 갖춘 소아청소년병원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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