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이 진단 보조를 넘어 의무기록 작성과 보험 심사, 환자 상담까지 의료 현장의 업무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AI가 의료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진과 AI가 역할을 분담하는 '인간 참여형(Human-in-the-loop)' 협업 체계가 정착돼야 의료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제언도 함께 제시됐다.
서울시병원회(회장 고도일)는 지난 21일 개최한 '제45차 병원 CEO포럼'에서 서울성모병원 디지털헬스센터장 고태훈 교수가 '생성형 AI의 의료 헬스케어 적용 및 과제'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강연에서 고 교수는 의료 AI 기술의 발전 방향과 실제 병원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AI 시대 의료기관의 대응 전략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고 교수는 먼저 알파고 등장 이후 바둑계가 급격히 변화한 사례를 언급하며 의료 분야 역시 AI 활용 능력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시간의 제약이 없고 지식 전이가 가능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조직이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며 "의료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포럼에서는 이미 병원에서 활용 중인 다양한 AI 솔루션도 공개됐다. 대표 사례는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음성 인식해 SOAP(주관적 진술·객관적 소견·평가·계획) 형식의 의무기록으로 자동 작성하는 '차트 자동 생성 AI'다. 의료진의 문서 작성 시간을 줄여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소아혈액종양 분야에서는 전문의 부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AI 챗봇 '해마 어시스트(Hema Assist)'도 소개됐다. 이 시스템은 진료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검사 항목을 추천하고 유사 증례를 검색해 의료진의 임상 판단을 지원한다.
이 밖에도 ▲중환자실(ICU) 활력징후와 간호기록을 자동으로 요약하는 AI ▲가정 호스피스 환자의 통증을 1차 평가하는 'AI 완화 도우미' 등 다양한 의료 AI 활용 사례가 소개됐다.
행정 분야에서도 AI 도입 효과가 주목받았다. 고 교수는 보험 삭감 이의신청 자동화 개념증명(POC) 사례를 소개하며, 상용 거대언어모델(LLM)과 병원 내부 소형 LLM을 함께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통해 보안성과 비용 효율성을 모두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은 보험 삭감 사례의 승소 가능성을 분석해 우선순위를 제시함으로써 의료진의 행정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사례도 소개됐다. 미국 유타주에서는 의사 개입 없이 만성질환 처방전을 갱신하는 AI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전체 요청의 72%를 AI가 즉시 처리했고 이 가운데 91%의 정확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 교수는 "AI가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업무를 맡는 영역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AI 확산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문제로는 데이터 편향성과 환각(Hallucination) 현상, 결과에 대한 설명 가능성 부족 등을 꼽았다. 특히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과정에서 의료진이 스스로 임상 판단 능력을 충분히 익히지 못하는 '네버스킬링(Neverskilling)'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의과대학과 전공의 교육 과정도 AI 시대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AI 개발부터 운영, 모니터링까지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Human-in-the-loop'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AI는 반복적이고 행정적인 업무를 맡고, 인간은 최종 판단과 책임을 담당하는 '켄타우로스형' 협업 모델이 의료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생성형 AI는 의료인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의료진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환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라며 "기술과 의료진의 전문성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의료 AI가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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