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대, 난치성 뇌전증 신약 개발 새 기준 제시

인간·동물 뇌 전사체 대규모 분석…질환 유형별 최적 전임상 모델 제시

난치성 뇌전증 치료제 개발에 활용되는 동물모델을 보다 정확하게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제시됐다. 환자의 질환 특성과 가장 유사한 동물모델을 분자 수준에서 객관적으로 확인한 세계 첫 연구로, 향후 신약 개발의 효율성과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은 김준호 임상강사(신경과학교실)와 이상보 연구원(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하고 김상우 교수(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김원주 교수(신경과학교실)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한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최신호에 게재됐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연세의대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을 통해 배출된 신진 의사과학자들이 주도했다.

난치성 뇌전증은 약물로도 발작이 조절되지 않는 질환으로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절실하다. 그러나 신약 개발 과정에서 필수적인 전임상 연구에 사용되는 동물모델이 실제 환자의 질환 특성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어 연구자의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 뇌 조직 샘플 694개와 설치류 뇌 조직 샘플 362개를 통합 분석하는 대규모 전사체 연구를 수행했다.

전사체는 세포에서 발현되는 유전자 전체를 의미하며 질환의 분자적 특성을 분석하는 핵심 자료다. 연구팀은 이를 활용해 사람과 동물의 유전자 발현 양상을 비교하고 동물모델이 실제 환자의 질환을 얼마나 잘 재현하는지 평가했다.

연구팀은 종(Species), 뇌전증 유도 방법, 약물 투여 경로, 병변의 편측성, 연령, 질환 단계 등 6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동물모델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시아랩(SIALAP)' 체계를 새롭게 개발했다.

분석 결과 해마에 카이네이트(kainate)를 주입해 뇌전증을 유도한 마우스 모델은 해마경화증을 동반한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분자적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해마에 반복적인 전기 자극을 가해 뇌전증을 유도한 흰쥐 모델은 해마경화증이 없는 뇌전증 환자의 질환 특성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동물모델이 각각 다른 형태의 뇌전증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분자 수준에서 입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이 운영하는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의 성과이기도 하다. 해당 사업은 임상 수련을 마친 의사들이 기초의과학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김준호 임상강사는 "환자의 뇌전증 유형에 가장 적합한 동물모델을 객관적으로 선택할 기준이 부족했던 것이 늘 아쉬웠다"며 "이번 연구가 보다 정확한 전임상 연구와 난치성 뇌전증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상우 교수는 "사람과 동물의 유전자 정보를 직접 비교해 동물모델의 정확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첫 사례"라며 "이번 연구가 뇌전증뿐 아니라 다양한 난치성 질환의 신약 개발에도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원주 교수는 "동물모델이 인간 질환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는지를 전사체 수준에서 체계적으로 검증한 것은 세계 최초"라며 "향후 전 세계 뇌전증 전임상 연구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