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슬레 같은 기업(?) "그저 부럽기만…"

수출만이 살길 공감...현실은 각종 과제 산적

우리나라에 세계적인 식품기업인 네슬레 같은 기업이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지난 이명박정부 때 농림부에 식품 파트를 갖고 오면서 농식품부로 바뀌었지만 야심차게 식품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의 계획은 다람쥐 쳇바퀴를 돌고 있다.

좁아터진 내수시장을 벗어나려는 국내 식품기업들의 노력이 힘겹기만 하다. CJ제일제당, 농심, 오리온, 대상, 오뚜기 등이 각개전투로 수출시장을 공략하며 크고 작은 성과들을 얻고 있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의 식품산업은 해외시장에서 아직도 가능성을 바라보는 걸음마 단계다.

국내 약 58000여 개에 이르는 제조판매업체들의 지난해 생산실적은 약 80조원 수준. 스위스 네슬레 1개 기업의 매출은 약 110조원에 이른다. 단순하게 58000 1의 겨룸에서도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국내 식품산업의 여건은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세계시장에 자신있게 내세울 만한 경쟁력 있는 제품이 부족하다. 수출시장에서 가장 큰 두각을 보이는 CJ제일제당도 세계 식품기업 매출액 순위에선 106위를 차지한다.

대부분 식품기업들은 가공원료를 확보하는 데 고충이 많다. 몇 년 전 팥의 생산이 크게 감소하면서, 팥을 원료로 가공식품을 만드는 제과제빵 관련기업이나 빙과류업체들의 생산활동이 크게 위축된 적이 있었다. 기업 입장에선 해외시장에서 팥을 수입해서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는 팥 수입량을 늘려주지 않는다.

공 들여 제품을 만들고 나면 이제 제품을 팔아야 하는데 수출 인프라도 취약하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중소업체들은 해외 판로가 막막하다. 해당국가의 시장 정보, 마케팅 전략, 수출과 관련된 각종 법이나 규제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편이다.

냉정하게 보면, 네슬레 같은 기업의 탄생은 한국에서 요원할 일일지도 모른다는 푸념도 있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식품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을 키워보자는 취지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실무적으로 들어가면 갖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게 된다"고 말했다.


 

▲2017년 세계 주요 식품기업 순위(출처 : 포브스)

  

글로벌 브랜드 태동, R&D 투자가 첫 걸음

식품업계 전문가들은 글로벌 브랜드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R&D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식품산업협회 고학수 전무는 "해외 유수의 식품 선진국들은 그동안 식품 R&D에 집중 투자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브랜드와 식품을 개발,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스위스 네슬레 같은 경우,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커피 제조기술을 개발해 세계 커피시장을 석권하면서 현재 연 매출 922억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식품분야 R&D 투자규모는 1481억원으로 국가 전체 R&D 투자(163000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9%에 불과하다. 또 국내 식품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율은 약 1% 정도로 크게 미흡한 편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식품이 나오려면 우선 식품기업들이 현재보다 연구인력을 확충하고 자체 R&D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게 공통의 목소리다. 정부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식품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먼저 식품 R&D 분야에 대한 예산을 늘려야 한다.

이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좀 더 '열린 시각'으로 산업을 바라보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식품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식품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령 중소기업적합업종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마련하자는 취지이지만, 결과적으로 각종 진입장벽 등으로 인해 식품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제약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원래 의도대로 중소기업을 보호하지 못하면서 관련산업을 위축시켜 되레 다국적기업들에게 시장을 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소기업적합업종 같은 규제보다는 대·중소기업이 상생 모델로 참여해 식품수출 선도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력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이 경우 대기업들의 주도적인 참여와 양보는 필수적이다.

선도기업은 자본, 기술, 경영, 마케팅 역량이 충분해 수출상품을 개발해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중소 식품기업들에 OEM 생산을 맡겨 상생을 도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같은 기업 간의 상생은 나아가 농업, 유통업체 간에도 상생협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식품안전 높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개선

현재 새 정부가 강조하듯 식품 안전성을 확보하되 불필요한 행정절차나 규제 등은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규제당국도 이를 인지하고 단계적으로 규제를 완화한다는 방침이지만 각종 법이나 시행, 시행규칙이 만들어져 또 다른 규제도 생겨나고 있다.

특히 식품기업들에게 원가상승의 요인이 되고 있는 환경 관련 부담금을 새로 정비하고, 세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의 입장에선 포장재재활용분담금, 폐기물부담금 등 환경부담금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부담금 기준을 좀 더 완화해 기업 부담을 덜 수 있는 측면도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수출상품이 나오려면, 무엇보다 가공용 원료 농산물의 안정적인 조달시스템이 갖춰줘야 한다. 국내 식품기업들은 국산 원료농산물을 사용하는 데 노력하고 있지만 국내 수급이 불안해지면 원료의 조달이 어렵다. 국산 농산물의 생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 국내 농산물이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며, 현재 정부가 수입물량을 위해 운용하는 TRQ 제도 역시 보다 탄력적으로 운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농식품부를 비롯한 정부기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농식품 분야라는 특수성 때문에 농가 소득과 농업의 수익 창출이 거의 최우선에 있는 관계로 가공식품 산업은 상대적인 홀대를 받아 왔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국내 식품기업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 제공과 다국적기업 등의 투자를 적극 유치해 세계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개발하고 글로벌 마케팅을 펼친다면 네슬레 같은 기업의 출현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제 K-Food 확장에 주목할 때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농식품 수출이 33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를 보였다.

일본, 아세안 중심 수출 호조가 지속되면서 상반기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6월 한 달간 수출액(59000만달러)도 전년 동월 대비 4.7% 증가해 전월 주춤했던 수출액을 회복하면서 상반기를 마무리했다.

다만, 주력시장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사드 문제가 붉어진 3월 이후 위축(6월까지 11.4%)되면서, 전체 농식품 수출 증가폭도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반기 수출 정책으로는 대중 수출 회복, 에스닉 식품시장·온라인시장 공략을 통한 대미 수출 확대, 적극적 판촉을 통한 대일본 수출 붐업 등 새로운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건강·영유아·친환경 트렌드 맞춤형 상품 발굴, 웨이상 대상 마케팅 등 온라인 진출 활성화, 편의점·외식체인 등 신규 판매처 개척, 유력 품목별 협회·한상(韓商)조직 등 빅바이어 발굴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식품 업체들의 해외 진출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한류 열풍에 편승하며 시작된 활발한 해외진출은 최근 들어 의미 있는 성과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수 소비 둔화라는 위기 속에 업체 간 경쟁 심화는 설상가상 사드변수로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 수출이 급격히 감소했다. 중국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결국 동력을 찾을 수 있는 요인은 해외 사업뿐이다. 포스트 차이나를 찾아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려는 노력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

'한류'가 예전 같지 않다는 시각도 있지만 아직 한류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시장이 더 넓다. 해외에서 한식당이 늘어나고 있고, 미국·중국을 중심으로 한식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으며, 국내 상위업체들의 사업 역량이 예전보다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호재다.

CJ제일제당, 농심, 매일유업, 오리온, 풀무원 등은 중장기적으로 해외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예상되는 기업들이다.

CJ제일제당은 미국에서 식품 사업 확대에 주력하고, 매일유업은 중국시장에서의 분유 수출 회복에 힘쓰고 있다. 농심 역시 일찍부터 공을 들인 결과, 미국 메인스트림(Mainstream) 채널 진출과 중국 중서부 내륙 지역에서 시장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이원식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카카오톡
  • 네이버
  • 페이스북
  • 트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