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사망 원인도 사혈? “세 번째 대통령직을 거절하고 농촌에서 비교적 건강한 생활을 보내고 있던 조지 워싱턴은 1799년 12월 진눈깨비가 날리던 어느 날 말을 타고 그의 농장을 둘러보았다. 그 다음날부터 목이 따끔거리고 목소리가 쉬었으며, 3일째는 호흡곤란이 왔다. 식구들이 그에게 당밀, 버터, 식초를 먹였지만, 더 숨이 막힐 뿐이었다. 워싱턴은 농장 관리인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사혈(瀉血)을 하도록 했다. 가족들은 탄산 암모니아수를 적신 천으로 그의 목을 감싸고 뜨거운 물에 발을 담가 주었다. 주치의였던 크레이크가 도착해서 워싱턴의 목구멍에 칸타리스를 적신 뜨거운 습포를 붙이고 더 많은 사혈을 시행했다. 식초와 샐비비 잎을 다려 만든 약으로 양치할 때마다 그는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뜨거운 물에 탄 식초를 빨아들이게 하고, 의사는 다시 사혈을 실시했다. 다른 두 명의 의사가 도착했다. 엘리사 딕이라는 의사는 워싱턴의 상태 악화를 보고 기관절개술을 주장하면서 더 이상의 사혈을 반대했다. 하지만 딕은 함께 있던 의사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고, 다른 두 의사는 계속 사혈을 주장했다. 더 많은 피를 빼낸 후 의사들은 워싱턴이 약간의 차도를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피는 천천히 그리고 진하게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들은 워싱턴의 몸에서 5파인트의 피를 빼낸 상태였다. 워싱턴은 감홍과 주석으로 만든 약을 반복해서 삼켰다. 워싱턴은 침대에 앉아 유언하면서 100명의 노예를 해방시켜 주기도 했다. 오후 8시경 의사들은 더 많은 발포제를 목에 붙이고 밀기울로 만든 찜질약으로 다리와 발을 감쌌다. 오후 10시 그는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11시30분 이틀 동안 앓던 워싱턴은 사망했다.”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료의 일부 내용이다. 사혈이 조지 워싱턴의 죽음에 대해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역사적 기록만 보더라도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의학적 판단으로 볼 때 사혈이 중요한 사망요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런데도 더욱 놀라운 것은 200년 전의 이 이야기가 사라지기는커녕 첨단의학의 시대에도 면면히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 고가의 연수원까지 성업 중국 고서 ‘황제내경’이나 우리 고전 ‘동의보감’에도 피를 뽑아 치료하는 방법이 수록돼 있다. 한의학에서는 모세혈관 내에 ‘정체된 피’(어혈)를 뽑아내 병을 치료하는 것을 사혈요법이라 하며, 이는 한의사의 고유한 의료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사혈이 한의학과 절묘하게 섞이고 변형돼 실제 효과와 관계없이 만병통치의 비방(秘方)인양 확산되고 있다. 전국에 100곳이 넘는 지점을 둔 사혈요법 단체가 성업 중이며, 찜질방에 둘러 앉아 사혈침을 쓰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만성통증이나 고질병이 있는 환자가 피를 빼는 곳을 찾아가거나 일반인들이 배워서 가족들에게 마구잡이로 피를 빼고 있다. 인터넷에는 심지어 정수리나 얼굴 등에 사혈요법을 시술하는 사진들까지 버젓이 올라와 있다. 그러다보니 피해자들도 여기저기서 속출하고 있다. 지난 2월 50대의 K씨가 운전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브레이크를 밟는 도중 숨이 멎은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2002년 협심증 진단을 받은 K씨는 작년 11월부터 석 달여 동안 한 무면허 의료인으로부터 사혈시술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족들은 “병원 치료를 받아 병세가 호전됐던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한 것은 사혈요법 때문”이라며 “면허도 없는 사람이 매주 200~600cc의 피를 뽑았다”고 주장했다. 또 만성신부전증을 앓던 L(51)씨도 2005년부터 1년 가까이 어느 사혈요법 연수원에서 1000여만원의 비용을 들여 사혈요법을 배웠다. 그는 “연수원 다니던 사람이 사혈요법으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해 배우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효과는 조금도 못보고 병세가 악화돼 결국 아들의 신장을 이식 받았다”고 밝혔다. 얼마 전에는 몸 안에 고인 나쁜 피를 빼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심천 사혈요법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면서 보건당국이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일 무면허 의료인 박남희씨가 자신의 호를 딴 심천 사혈요법으로 ‘모든 병을 치료한다’고 과대광고하면서 전국에 교습 연수원까지 차려놓고 불법 의료강좌와 치료를 해온 심천 사혈요법 연수원 4곳을 고발조치하고 24곳은 행정지도 했으며, 박씨에 대해서도 강력한 주의를 촉구했다. ■ 허위 자격증에 목숨 담보 박씨는 일반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것과 다른 사혈침을 사용해 즉시에 많은 양의 피를 뽑아내 피 부족에 의한 허혈 증상으로 탈진을 일으키는 등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교육 수료자에게 돈을 받고 1, 2, 3급 자격증을 발급한 뒤 이들에게 교육생 20~30명이 참여하는 지방 연수원을 열도록 하는 등 피라미드식으로 허위 자격증을 양산하면서 고가의 의료기기 및 건강식품까지 팔아왔다고 한다. 박씨는 언론 등을 통해 “모든 질병의 원인이 피가 못 도는 것”이라며 “혈관을 막고 있는 몸속의 나쁜 피, 즉 어혈만 제거해 주면 어떤 질병이든 완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이를테면 피만 빼면 암이나 신부전증은 물론, 사스나 에이즈도 고칠 수 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박씨의 주장은 대부분 허위로 드러났다. 지난 3월 13일 방영된 MBC ‘PD수첩’에서는 심천 사혈요법에서 말하는 어혈이 과연 일반 혈액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보기 위해 사혈 전 체내 혈액, 사혈 시 혈액, 사혈 후 혈액을 각각 추출해 녹십자 의료재단에 성분분석을 의뢰한 결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음을 확인했으며, 병이 치유가 되기는커녕 사혈로 인해 부작용을 경험했거나 심지어 병이 악화됐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박씨가 직접 운영하는 중앙연수원은 충남 금산에 있고, 지방연수원은 전국적으로 127곳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처럼 최근 들어 심천 사혈요법과 같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보완대체요법에 몸을 맡기는 환자들이 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혈침을 사용해 부항으로 피를 뽑아내는 사혈요법을 수개월째 받았지만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쳐 암세포가 이미 다른 곳으로 넓게 전이된 말기 암환자들도 많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로 구성된 안티 심천 사혈요법 사이트까지 등장해 사혈 반대운동도 적극 펼치고 있다. 수백 가지에 이르는 보완대체요법 가운데는 상당수가 임상적 연구 없이 실시해 각종 치료효과는 물론 부작용조차 규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론의 유효성을 검증할 방법이 있는데도 학문적 노력은 방치하고 주장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한의학연구원 의료연구부와 동국대 한의대 침구학교실이 전국 한의사 3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중 9명(89.5%)에 가까운 288명이 사혈치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8.7%(82명)는 하루 환자 중 절반 이상, 51%(147명)는 10~40% 환자에게 사혈치료를 했다. 이에 반해 서양의학에선 혈액 중 적혈구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해 피가 끈끈해지는 진성적혈구증다증일 때 500cc 가량의 피를 뽑아 점도를 낮추는 것 외에는 사혈치료를 하지 않는다. 진성적혈구증다증도 10만명에 2명꼴로 매우 희귀한 병이다. ■ 반드시 전문가 시술 받아야 한의사들은 “한의학에선 탁해져 뭉친 정체된 피를 제거하기 위해 사혈을 한다”며 “피는 부족하면 항상 새로운 피로 생성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정체된 피를 뽑아내면 혈액순환이 잘 되어 아픈 부위가 치유되고, 또 새로운 피가 혈관의 막힘을 방지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한의학계에서 ‘정체된 피’를 한번이라도 확인했는지, 어께 결리는 것이 ‘혈액순환이 안 되어서’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라며 “어쨌든 한의학계는 이 원시사회의 유물인 사혈이 마치 우리나라 고유의 소중한 치료법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정체된 피를 뺀다고 해서 실제로 어혈이 빠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사혈은 의료행위다. 의료인이 아닌 강사가 피교육생에게 침으로 정맥을 찔러 나쁜 피를 뽑아낸 뒤 부항을 뜨는 경우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받게 된다. 잘못하면 조직손상, 빈혈, 영양실조, 탈진, 감염 등 치명적인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이 시술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사혈요법은 일시적인 모세혈관 확장으로 진통과 시원함을 느낄 뿐이지 절대로 질병이 치유되거나 건강해지는 방법이 아니다”며 “오히려 만성병을 악화시키고, 피를 빼는 것에 중독성이 생기며, 사혈을 많이 할 경우 체액이 손실되고 모세혈관이 수축되어 결국 체온도 떨어질 수 있어 면역력이 크게 저하된다”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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