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코르테스와 피자로가 이끄는 스페인 병사들은 눈 깜짝하는 사이에 잉카문명을 정복했다. 당시 코르테스와 피자로의 병사는 모두 합해야 1000명이 넘지 않았다. 잉카문명이 이처럼 빨리 멸망했던 것은 전염병 때문이었다.
이 전염병은 구세계에서는 이미 지방병화 된 천연두였다. 새롭게 유입된 천연두로 인해 삽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전의를 잃은 신세계는 스페인을 위시한 유럽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두 번째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전염병은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이다.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그들 배낭 속 쥐를 유럽으로 옮겨왔고, 집쥐와 들쥐가 뒤섞이면서 흑사병은 쥐들의 전염병이 됐다가 사람에게 옮겨졌다. 감염경로가 줄어든 흑사병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유럽 인구의 1/3 이상이 사라졌다.
그 후 세계적인 유행을 가져온 전염병은 콜레라다. 신대륙이 발견되고 동쪽으로 유럽 열강들이 진출하면서 콜레라는 인도에서 인도차이나,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대유행했다. 우리나라도 근세 개화기에 가장 무서운 병이 콜레라였다. 박경리 원작 '토지'에서는 약삭빠른 조준구가 익힌 음식과 끓인 물로 콜레라의 유행에서 살아남아 최참판댁 재산을 가로채고 서희는 만주로 도망가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때 월남으로 군대를 보냈다. 당시 정부는 월남파병의 가장 큰 문제로 흑사병을 우려했다. 파병에 앞서 선발부대가 조사한 것도 들쥐에서 옮겨지는 흑사병이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흑사병은 우리 장병에게 발병하지 않았다.
아직도 동남아에는 여러 가지 야생동물을 잡아먹는다. 특히 월남에서는 들쥐가 기호식품으로 인식되기도 해 오늘날까지도 매년 몇백명씩 흑사병이 발생하고 있다.
중동지역도 근래 다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격돌로 학살의 현장이 된 가자지역은 전염병의 온상이 되고 있다. TV 보도에 따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석기시대로 되돌아갔다. 배탈과 피부병 환자가 늘어나 방역 당국도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1차 대전에서는 전사자보다 병사자가 많았다. 병사들 사이에서 유행한 전염병 때문이다. 2차 대전때는 병사자가 줄고 전사자가 늘어났다. 방역약인 DDT와 항말라리아제로 새롭게 개발된 아타브린 덕분이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고전적인 수인성전염병이나 테타누스(Te tanus)같은 낯설은 전염병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바라건대 가자지역의 비극은 더이상 확대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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