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에피데믹의 미래(1)

신상엽의 감염병 팬데믹 이야기 (6)

일반적으로 감염병이 팬데믹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주로 아래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신종 병원체에 의한 감염병이어야 한다. 
둘째, 사람 간 전파가 쉽게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조기 진단 및 감염병 방역이 어려워야 한다. 
넷째, 효과적인 치료제나 백신이 없어야 한다. 

미래에도 위의 조건을 최대한 많이 만족하는 병원체에 의해서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각각의 조건에 대해서 면밀히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신종 병원체에 의한 감염병이어야 한다. 

인간이 어떤 감염병을 앓고 회복된 이후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해당 병원체에 대한 방어력을 가지게 된다. 해당 병원체에 대한 중화 항체가 생성되어 일정 기간 방어력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고, 면역 기억 세포들이 면역 기억력을 가지게 되면 장기간 방어력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KMI한국의학연구소 신상엽 학술위원장, 감염내과 전문의

이렇게 인간의 면역 체계가 이미 경험해서 방어력을 가지고 있는 병원체에 의한 감염병은 팬데믹을 유발하기 어렵다. 하지만 같은 종의 병원체라고 할지라도 신종이 생기게 되면 인간이 해당 병원체에 대해 방어력이 없기 때문에 팬데믹을 유발할 수 있게 된다.

크게 보면 세균, 바이러스 그리고 진균(곰팡이)이 인체에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대표적인 병원체이다.

이 중 ‘세균’이나 ‘진균’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소화시켜 에너지를 얻고 생존과 번식을 하는 생명 현상을 스스로 할 수 있다. 또한 크기가 크고 독자 생존이 가능하고 안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종이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이유로 유사 이래 진균에 의한 팬데믹에 대한 보고는 없고 19세기 이전에는 페스트나 콜레라와 같은 세균에 의한 팬데믹이 있었지만 20세기 이후에는 세균에 의한 팬데믹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에너지를 얻을 수 없고 다른 생명체(숙주)의 세포 안에 들어가 기생하면서 자신과 똑같은 자손을 만들어 낼 때에만 생존과 번식이 가능하다.

단, 바이러스가 들어갈 수 있는 숙주에는 제한이 있고 감염이 가능한 숙주라고 할지라도 들어갈 수 있는 세포에도 제한이 있다. 바이러스가 숙주의 세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이러스 단백질막이 열쇠, 숙주 세포벽이 자물쇠라고 했을 때, 열쇠와 자물쇠가 맞는 특정 세포에만 들어갈 수 있다. 때문에 바이러스가 들어가서 생존할 수 있는 숙주와 세포는 대개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호흡기 바이러스라고 명명하는 바이러스는 다른 동물이 아닌 주로 사람에게만 들어올 수 있는 바이러스를 의미하고, 사람의 여러 세포 중에서 주로 호흡기세포를 열쇠로 열고 들어와서 증식하는 바이러스를 의미한다.

바이러스는 크게 DNA 바이러스와 RNA 바이러스로 구분한다. 바이러스는 유전자(DNA, RNA)와 단백질막으로 구성되는데 DNA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를 DNA 바이러스라고 부르고 RNA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를 RNA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DNA 바이러스는 크고 안정적 구조를 갖추고 있고 유전자 변이가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아 사람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가 동물을 감염시키거나 동물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가 사람을 감염시키는 현상 즉 소위 ‘종간 장벽’을 넘어 감염 가능한 숙주의 폭을 넓혀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RNA 바이러스는 크기가 작고 유전자 변이가 쉬워 들어갈 수 있는 숙주의 폭도 넓고 열쇠 모양을 계속 바꾸는 변종이나 신종이 수시로 만들어진다.

특히 사람과 동물이 같이 생활하는 환경에서는 바이러스가 사람과 동물을 옮겨 다니며 사람과 동물의 유전자가 조합되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 과거에는 동물만 감염시켰던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넘어 사람도 감염시킬 수 있게 되어 ‘인수 공통 감염병’을 유발하는 신종 바이러스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RNA 바이러스는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 20세기 이후에 발생한 팬데믹과 에피데믹은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RNA 바이러스 감염병에 의해서 발생했다. 미래에도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RNA 바이러스 중에서 신종이 나타나면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요약하면, 세균, 진균(곰팡이), DNA 바이러스는 신종 병원체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팬데믹을 유발하기 어렵지만, RNA 바이러스는 주로 사람과 동물이 같이 생활하는 환경에서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신종 바이러스가 만들어질 수 있고 이렇게 인수공통감염을 일으키는 신종 RNA 바이러스는 팬데믹을 유발할 수 있다.

/KMI한국의학연구소 신상엽 학술위원장, 감염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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