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 율사(律士), 의사와 정치

허정 교수의 보건학 60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전 보건대학원장)

선거철이 지나고 새로운 내각이 구성되기 전에는 으레 많은 사람들이 장·차관 후보 물망에 오른다. 그들 중에는 직업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특히 눈에 띄게 많은 직업군이 검사, 판사, 변호사 같은 율사들이다.

미국도 몇 해에 걸쳐 전국적인 선거를 한다. 당선인 중에는 변호사 출신이 가장 많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는 의사다.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에 끝까지 항쟁하다 생을 마친 칠레 아옌데 대통령도 의사였다.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화시켜 본다면 아프리카 같은 신생국가에서는 군사독재가 많았다. 우리나라도 장면 정권 이후 오랫동안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군인 출신이다. 그 후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인 출신 정치가들이 득세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세태가 많이 바뀌었다. 일본에서는 아예 세습적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변호사도 아니며,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내각책임제 아래 장·차관을 하고 있는 직업정치인이다. 또 라틴아메리카나 남미에서는 아직도 의사들이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특정 직업을 가져야 국회의원이 되고 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에는 국가고시를 통해 공무원으로 공직에 발을 디딘 후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 마침내 장·차관으로 발탁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정치에 정도가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논어의 위정 편을 보면 주자는 '정(政)은 정(正)'이라고 해석했고, 이를 보면 2천년 전에도 깨끗하고 올바른 정치가 필요했던 것은 틀림이 없다.

주자의 이론에 따르면 정치는 바르고 공정하게 집권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보면 정치와 경제가 밀착돼 부정과 부패의 고리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거가 끝나고 정권이 바뀌면 옛날 사람들의 과거를 밝혀서 정치보복을 하는 행태가 자행되는 경우도 많다. 한때 일본에서는 특별히 교육시킨 엘리트들을 고위직에 오르게 해 부패의 고리를 끊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볼 때 선진국 수준에 올랐다. 그에 맞춰 정치도 선진화되기를 바란다. 미국에서는 일반인들은 정치에 참여하는 직업적인 율사들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다. 심지어 이웃에 변호사가 오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깨끗하고 올바른 정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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