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 사혈후 증상 호전

소변폐색 우수혈로 기적이뤄

  
(1)중풍 : 서금요법(신수지침ㆍ특상황토서암뜸ㆍ서암사혈침관)
수지침은 부작용 없이 안전하며 효과가 좋아 수지침 요법사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수지침 회원이다.
1996년 우연히 배우게 된 수지침으로 새생명을 살고 있는 우리는 비디오를 찍어 놓지 않은 게 한이 될 정도다.
동생은 다운증후군의 장애인이다. 장애도 안타까운 현실인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중풍이라는 질환이 동생에게 찾아 왔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중풍으로 인해 수지침의 효능을 알지도 믿지도 못할 시절에 무작정 의정부에 있는 중풍 전문병원으로 달려가서 14일간을 입원하게 됐다. 엄청난 진단과 병원에서 좋다는 양한방의 별별 치료를 다했으나, 조금의 차도도 없이 팔다리는 점점 더 못쓰게 됐다.
오른쪽으로 온 중풍은 어눌한 말을 더 어눌하게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차도가 없어 답답한 와중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사혈을 해줬다.
그때는 그냥 초급만 배웠던 시절이라 탁한 피를 그냥 빼주고 싶어 시술을 시도 했다. 혈 자리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침했다.
그런데 이 작은 수지침 하나가 가진 효과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움직이지도 못하던 오른손의 네 번째 손가락이 아주 조금의 반응이지만 움직여, 내 눈을 의심 했다. 평소에 지회장님이 수지침은 배운 만큼, 믿는 만큼 효과가 있다고 했어도 설마 했었다.
다음 날에도 사혈과 수지침으로 시술하고, 그 다음날에도 허겁지겁 시술했다. 며칠 후에는 손가락 다섯 개가 다 한 마디만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병원에 있을 필요가 없음을 알고 즉시 퇴원시켜 집에서 신실증 중풍 처방과 황토특상서암뜸으로 전심전력으로 시술했다.
1주일이 되던 날 동생이 없어져 애타게 찾았지만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동생이 오는 모습을 보고 수지침을 창시해 준 유태우 박사님께 너무너무 감사하고 생명의 은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생의 아픈 오른손과 왼손에는 두 개의 약수병이 들려 있었다. 중풍환자가 수지침 맞고 일주일 만에 일어났다면 누가 흔쾌히 믿어 줄 수 있을까? 허나 이 일은 사실이다.
꿈만 같은 일이고 동생은 예전으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중풍이 왔었다라고 말하기 이전에는 알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그렇게 평화로움도 3년쯤 후,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는 모든 신체기관을 현저하게 저하시켜 동생을 괴롭히고 있었다. 원래 동생이 방광 쪽이 약해 뇨가 새어 나올 때마다 수지침 시술을 하면 멎곤 했다.
어느날 배가 너무 아프다고 해 신천종합병원을 갔으나 진료 결과는 참담했다. 소변폐색이 심해 도뇨관을 삽입해야하는데 그것조차도 불가능해 장례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동생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하는지 착잡했다. 동생이 죽음을 앞둔 것처럼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의사는 가족을 불러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라며 나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날 온 가족이 모여 동생을 붙들고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동생은 너무 배가 아파 뒹굴어 병원에서는 마지막이니 사혈침과 수지침을 시술하라고 놔뒀다.
병원 허락도 받았고 동생을 보니 더 기다릴 수도 없고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눈물의 오수혈을 꼽았다.
허나 수지침의 효과는 다시 한 번 일어났고, 바라보던 병원 식구들까지도 기쁘게 했다. 배가 아파서 뒹굴던 대책 없던 동생이 ‘끙’하는 비명과 함께 뇨가 쏟아지는 게 아니겠는가. 병원에서도 어디에서 배웠냐고 물어보는 수지침. 그 후에 병원에서 지회장님을 초빙해서 과장급들이 배우게 됐고 몇 분은 수지침사까지도 됐다.
지금 동생은 현재까지 밥보다 서암뜸을 보약처럼 챙기며 끼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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