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철옹성, 능력주의와 공정의 함정

<기고> 유승범 서울대병원 외과 임상교수

유승범 서울대병원 외과 임상교수

최근에 젊은 세대의 가치관의 주류는 능력주의와 공정에 방점이 있는 듯하다.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고, 능력이 있는 만큼 대가를 받는다는 철학에서 시작하는 능력주의는 일견 보면 매우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인 듯하다.

이러한 공정의 원칙이 제대로 실현되도록 체계가 잘 갖추어진 사회가 좀 더 발전된 사회이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얻은 결과를 정의롭게 나누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어느 나라나 목표로 삼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회라야만 젊은이들이 노력하는 삶을 살면서 그 안에서 희망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지만, 노력이나 능력의 합당한 대가를 정하는 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발전과 함께 했던 화두였으며, 왕정시대에서부터 민주주의 사회로 이어질 때에도, 그리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분쟁에서도 언제든지 있었던 문제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대국인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서도 최근까지 좌파와 우파로 갈라져서 어떤 사람은 자유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은 최소와 최대값에서 어느 정도의 한계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본인들의 생각이 맞다고 주장하면서 중간에서 만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중도의 미덕은 사라진 지 오래이며, 승자독식의 깃발만이 나부낄 뿐이다.

어쨌든, 노력이나 능력의 대가가 정해지는 데 있어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이 유형적 또는 무형적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결과라는 것이다.

내가 가진 능력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복잡한 사회에서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의 총합으로 결정된다.

그것이 합리적이건 합리적이지 않던, 결과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 크기를 키우기 위해서 싸우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정해진 규칙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이 결국은 사회 전체를 설득해야만 올라 갈 수 있다. 그 방식이 승자독식이기 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리적인 방식의 합의에 의한 것이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MZ세대로 일컬어지는 우리나라의 현재 젊은 세대는 사교육의 홍수 속에서 자라난 세대라고 볼 수 있다. 혹자는 걸음마를 떼고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사교육을 시작해야 된다고 말한다.

놀이터 보다는 학원에 가야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초등학교를 지나, 방학 때도 어디 놀러 가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중 고등학교 시절을 어렵게 보내고, 드디어 좋은 대학에 입성하면 거기서 또다시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대기업 입사 경쟁에 돌입해야 한다.

본인들이 어린 시절 놀지도 않고 잠도 줄여가면서 공부했던 노력의 결실이 성공으로 이어져서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는 보상심리가 크게 작동하여 무한 능력주의의 공정에 대한 확신과 가치관이 매우 공고히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2017년 있었던 인천국제공항 사태에서 보듯이, 일정기간의 경력이 있는 비정규직 보안요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에서 젊은 세대들의 대다수는 정규직으로 입사하기 위해 공채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들인 노력에 대한 보상을 시험 없이 입사한 비정규직과 나누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비정규직이 일정 기간 근무하면서 쌓은 경험과 경력은 노력의 성과 또는 그에 따른 능력이라고 인정할 수 없고, '바늘구멍 통과하기' 같은 공채 시험 합격을 위한 수험생들의 애절한 노력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자회사 정규직 편입이라는 방식으로 한발 물러서게 만든 젊은 세대들의 '결기'는 세상을 크게 놀라게 했지만, 시험을 통과하는 노력만이 성과를 누릴 자격이 있고 다른 방식의 노력에 대해서는 폄하하게 되는 편향된 시각의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최근에 발생한 의정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의료계 간의 의료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는 필수의료나 지역의료를 담당하는 의사가 점점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고령인구가 급증하고 있고 보건산업의 수요도 늘고 있어 의료인력 부족이 현재와 미래의 문제로 봤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미용성형 등 비급여 진료에 필요한 의사 인력의 공급이 늘어나 결국 포화상태가 되면 자연스럽게 필수의료나 지역의료를 선택하는 의사들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의료계와 전공의들은 필수의료나 지역의료 의사의 부족이 의사 숫자의 문제라기보다는 필수의료의 저수가 정책이 문제라고 하며 서로 물러섬 없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한쪽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맞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정부도 2,000명이라는 숫자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미래에 대한 근거 있는 예측을 통해 나온 것인지 다시 한 번 신중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고, 의료계와 전공의들도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안이 있는지 고민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전공의 파업 사태의 이면에는 MZ세대의 능력주의와 공정에 대한 만능 의식이 투영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정부가 의대생 2,000명 증원을 갑작스럽게 발표하여 발생된 사태라고는 해도,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는 그 이전부터 지방공공의대 설립으로 인한 400여명의 증원도 반대해 왔다.

본인들은 놀고 싶은 학창 시절을 다 포기하고 열심히 공부만해서 그 어렵다는 의대에 진학하였으며, 찬란해야 할 청춘의 젊은 시절을 병원의 당직 등의 희생으로 다 바치고, 전문의가 되면 좀 더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의대 정원을 인위적으로 늘려서 본인들보다 노력을 적게 하고 비교적 쉽게 들어온 의대생들이 역시 양질의 집중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전문의가 될 가능성이 많고, 그들과 같이 경쟁하여 노력의 대가를 나누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일견 보면 맞는 말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함정이 있다. 바로 의사의 직업적 역할과 그에 대한 보상은 좋던 싫던 사회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의사라는 직업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지, 또한 의사가 얼마를 벌어야 적정한 것인지, 의사가 사회에서 본인들의 권리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주장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회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본인이 죽도록 노력해서 얻은 의사 전문의 자격증으로, 가질 수 있다고 예상했던 대가가 줄어들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본인이 능력이 있다고 모든 것을 다 결정해서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능력에 대한 대가는 원칙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회를 설득해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원하는 만큼의 대가를 얻어내기 어렵다.

또한 한 가지 더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은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본인들의 노력으로만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사회로부터 받은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된 것들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전공의들은 정부가 본인들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생각하는 합리적인 전문가라면, 의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은 기성세대의 의사들이 그 동안 사회로부터 과도하게 많은 권한과 대가를 받아 왔다고 생각하며, 그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의사 수 증원에 찬성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필수의료와 지방의료의 수가를 미용성형 등 비급여 진료의 수익 크기만큼 동일하게 올려서 공급의 증가를 유도하는 것은 국가 전체로 보면 의료비의 과도한 상승을 불러오기 때문에 국민들이 동의하기 어렵다.

미용성형 등 비급여 진료에 투입되는 과도한 의료비를 낮춰서 그 여분의 비용을 필수의료와 지방의료에 사용되도록 전환하는 것이 현재까지 대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방향인 듯하다.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방향대로 정책을 이행하는 것이 국가적인 의무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기 전에는 전공의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전문가의 지성으로 무장하여 '무지몽매한' 국민들에게 계몽한다는 결의에 차 있더라도, 의사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의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수도권에 몰려있는 대형병원들과 그 안에서 바쁘다고 잘 설명해 주지 않는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의사들의 모습에 진저리를 치며 의료계의 체질 개선을 바라는 것이 의료에 대한 눈높이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의사 숫자라도 많다면 경쟁이라도 될 테니 불만족스러운 의료 서비스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의료계는 필수의료 저수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미용성형 등 비급여를 통해 과잉진료가 성행하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스스로 자정의 노력을 했는지 별로 들은 적이 없다.

또한, 의료 행위 중에 천인공로 할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무분별한 마약 처방을 통해 사회를 혼란으로 빠트린 경우에도 계속해서 의사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맞는지도 의문이다.

성공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능력이 있다고 해서 무한정으로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능력주의가 항상 공정하고 무조건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개인의 능력은 본인들의 각고의 노력과 더불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보살펴 준 사회의 도움으로 만들어 지며, 그렇게 길러진 능력에 의해 숭고한 직업적 역할이 부여된다. 이를 인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존중할 때, 사회는 기꺼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그것이 성숙한 사회이고, 우리 젊은 MZ 세대들이 만들어 가야 할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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