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학 전문인력 부족에 진료환경도 악화… 정책 개입 시급"

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 기념 기자간담회 열고 혈액학 전문인력 조사 공개
인구 10만명당 혈액내과 전문의 0.3명 심각… "수가, 근무환경 개선 시급"
혈액암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지연·암질환심의위원회 구성 등 문제 제기

국내 혈액학 전문 인력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고령화까지 겹친 상황에서 환경에 대한 불안으로 신규 유입은 줄어 미래에 혈액질환을 볼 수 있는 의사 부족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 

이에 혈액질환 전문가들은 근무여건과 수가개선, 후임 전문의 등 신규인력 유입을 위한 제도 지원과 개선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대한혈액학회는 지난 27일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2025 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ICKSH 2025)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혈액학회는 국내 혈액학 분야(림프종, 백혈병, 다발성골수종 등의 치료 및 진단인력)의 인력문제에 대한 149명의 혈액학 의료진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학회 최초로 실시, 공개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혈액학 관련 의사들의 현황을 평가하고 업무에서 직면하는 어려움과 개선 필요 영역을 확인하기 위해 실시됐다.

학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혈액내과 전문의는 전국 160명, 소아혈액종양분과 전문의는 74명, 골수 판독이 가능한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는 80여명, 림프종 진단이 가능한 병리과 전문의는 55명이었다.

해외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혈액내과 전문의는 0.3명으로, 2.9명인 영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다. 여기에 혈액학 인력의 수도권 집중과 지역 불균형도 심각한 상황이다.

의사 고령화도 문제로 꼽혔다. 학회 조사에 따르면, 혈액내과 및 소아 혈액종양 전문의의 평균 연령이 증가하고 있었다.

혈액질환 전문인력 중 50세 이상 비중은 혈액내과 45%, 소아 53%, 병리 49%였다. 60세 이상은 혈액내과 19%, 소아 26%, 병리 13%나 달했다. 절반 이상의 인력이 50세 이상의 고령 전문의인 상황이다. 여기에 60세 이상 전문의 비율이 증가해 은퇴로 인한 추가 인력 부족이 예상되는 중이다.

대한혈액학회 김혜리 홍보이사는 "소아 혈액종양 환자를 볼 수 있는 전문인력 중 혈우병 보는 인력들이나 은퇴 후에 외래 진료만 보는 전문인력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50명 정도로 추정한다"며 "여기에 백혈병을 볼 수 있는 인력이 정말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고, 골수 이식도 마찬가지다. 급성 백혈병의 비율이 많은 소아혈액 종양 분야에서는 특히나 골수 이식의 능력이 굉장히 필요한데,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센터 자체가 더 줄어들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우려했다.

김 이사는 특히 당직까지 하면서 신규환자를 다 받아내는 병원은 5개에서 10개 사이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혈액암 신규환자를 보지 않겠다 이렇게 아예 웹사이트 진료에 올려놓으신 분들도 있고, 사실 골수 이식 같은 경우는 가능한 센터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며 "혈액암 자체도 입원치료를 24시간 이어나간다는 것이 힘든 상황인데, 골수이식 같은 경우는 더 위험하고 경험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 인력들이 24시간 365일을 커버할 수 있는 병원이 돼야 하는데, 당연히 혈액내과 전문의가 한 명이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혈액 질환 특성상 장기간 치료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고령화가 계속되고, 유입이 없으면 그런 환자들을 봐야 하는 후배들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혈액학 전문의들이 분야의 미래를 걱정하고 퇴사를 고려하는 이유로는 업무환경의 악화가 문제인 것으로 지적됐다. 

149명의 의료진 중 17%가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를 하고 있었으며, 80~100시간 근무자는 29.5%에 달했다. 야간 당직 월 7회 이상도 16.1%에 달했다. 80% 이상이 피로와 불면증 우울증을 호소했다.

이에 학회는 개선 방향으로 ▲정부의 의료진 경청 ▲후임 전문의 양성과 진료지원인력의 확대 ▲고강도 근무와 위험도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그에 상응하는 휴식 보장 ▲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컨센서스 및 법적보호 ▲필수진료 지원 강화 ▲혈액진료관련 수가 개선 ▲혈액진료인력의 지역간 불균형 해소 ▲보험급여의 불합리한 삭감문제 개선 ▲근무 여건의 개선 및 급여 인상 ▲신규인력이 유입될 수 있는 여건 마련 등을 촉구했다.

이날 혈액학회는 특히 혈액암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지연으로 환자의 치료 접근성이 제한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학회측에 따르면 ▲텍베일리(성분명 테클리스타맙, 얀) ▲엘렉스피오(성분명 엘라나타맙, 화이자) ▲탈베이(성분명 탈쿠에타맙, 얀센)와 같은 이중항체 치료제가 최근 미국 FDA에서 2상 임상시험에서 보고된 유효성 및 안전성을 바탕으로 재발/불응성 다발골수종의 치료에서 신속 승인됐으며, 국내에서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신속 허가됐다.

그러나 확증 임상시험을 통해 표준치료와 직접 비교한 데이터의 부재, 장기 추적 데이터 부족 등을 이유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급여를 유보했다.

임호영 학술이사는 "기존 약제들과 확연한 치료 성적 차이를 보여주는 새 기전의 혁신 신약들을 과거 기준과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게 경직된 접근으로, 임상적 유용성 미충족 의료수요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다발골수종뿐 아니라 림프종 치료에서 엡킨리(엡코리타맙, 애브비), 컬럼비(글로피타맙, 로)와 같은 이중항체 치료제들 역시 동일한 문제로 급여 등재가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발골수종 및 림프종에서의 이중항체 치료제들은 기존 치료에 실패한 재발ㆍ불응 환자에 실질적 생존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치료 옵션"이라며 "급여 지연으로 인해 접근이 사실상 제한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와함께 학회는 암질환심의위원회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 이사는 "현재 신약 급여화에서 중요한 결정단계인 심평원 암질환심의위원회는 총 41명으로 구성됐지만, 이중 혈액암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혈액내과 전문의는 6명에 불과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위암, 폐암, 대장암 등 고형암을 전문으로 하는 위원들로 구성돼 있는데, 각각 고형암이 암 종류에 따라 특성이 다르듯이 혈액암 또한 각 병에 따라 치료 특성이 서로 다르다"면서 "현자와 같은 위원회 구성으로는 각 혈액암에 대한 신약 평가 기준에 대한 전문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임 이사는 "기존 치료 결과보다 월등한 결과를 보이는 2상 임상시험 결과에 기반해 신속 허가를 받은 신약에 대해 허가 취지를 이해하고, 조속한 급여 등재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고형암과 구분되는 별도의 혈액암 전문 암질환심의기구가 구성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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